믿음이 없이는

아브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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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란 무엇인가 2. 함께 대화하다 3. 친구사이 4. 우리가 해야 할 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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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여러분 친구 있죠? 친구는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아니 친구는 어떤 뜻을 갖고 있을까요?
그냥 인사만 하는 친구 말고, 정말 내 속마음을 다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여러분에게는 있나요? 친구라는 관계는 어떻게 보면 서로 헌신하고 또 서로를 우선하는 관계이기도 해요.
성재하면 민기가 생각이 나고, 민희 하면 희연이가 생각이 나고, 샘이하면 소사영이 생각이 나는 것처럼!
서로를 아껴주고 또 사랑하고 또 우선하는 관계. 또 필요하면 기꺼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친구이죠.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사야 41장 8절을 보면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는 기록이 있어요.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는 ‘벗'. ‘친구’에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해지고 또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겠죠.
그렇게 나의 삶을 나누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서로간의 신뢰가 쌓일 것이고
신뢰가 쌓이면 같이 붙어 다니게 되고,
같이 붙어 다니다보면 또 미세하게 달라진 것도 바로 알아 볼 수 있을만큼 가까운 관계가 되겠죠.
하나님과 아브람의 관계가 그랬어요. 하나님이 아브람을 ‘나의 벗. 나의 친구'라고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주셨어요.
지난 주까지 12-13장을 나누었고, 순서대로라면 오늘은 14장을 나누었어야 해요 . 그런데 15장으로 바로 넘어왔어요.
14장은 전쟁 영웅 아브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멜기세덱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이것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도 될만큼 다양한 내용들이 있어서, 14장을 건너띄고 15장으로 왔어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14장을 읽어보세요. 14장과 15장은 굉장히 분위기가 달라요.
14장은 긴장감 넘치는 전쟁에 관한 기록인데, 15장은 14장과 다르게 갑자기 조용하고 평온한 하지만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한 사람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15장은 하나님과 아브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요. 굉장히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이 직접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 거의 없는 장면 중 하나인 하나님과 사람의 직접 대화가 바로 오늘 본문이에요.

문답

15장 1절을 보면 “이 후에"라고 적혀있어요. 어떤 사건 “이 후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라는 뜻이겠죠.
이 전에 어떤 사건들이 아브람에게 있었죠?
먼저 갈대아 우르 고향을 떠났어요. 그리고 첫번째 시험. 기근 앞에 참패. 완전히 실패해버렸어요. 애굽의 시련에서 살아돌아왔어요.
그리고 소중한 조카 롯이 떠났어요.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비참한 결정을 내린 롯이 자신의 곁에 떠났어요.
마지막으로 14장의 내용.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에 맞서 싸웠어요.
고향을 떠나온 이후 정말 다양한 사건들이 아브람의 삶 속에서 있었어요. 오늘 본문은 이러한 모든 사건들이 지나간 “이 후에" 무엇인가를 깨달은 아브람이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하는 장면이에요.
그돌라오멜 동맹군과의 전쟁 이후 아브람은 엄청난 감정적 대가를 치뤄내고 있었어요.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아브람은 이방인이에요. 그런데 그 이방인이 계속해서 부자가 되고 잘 나가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했을까요? 말해 뭐해요. 꼴 보기 싫었겠죠.
도대체 저 사람은 뭔데 와서 혼자 잘되고 잘먹고 잘살고 있는걸까? 생각했을거에요. 모든 사람들이 아브람 가족을 싫어해요. 시기하고 질투해요.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이런 분위기에서 아브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병을 기르는 것이었어요.
언젠가 혹시 일어나게 될 전쟁을 준비하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병을 기르고 훈련시켰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을거에요.
전쟁은 다양하고도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니까요.
바라지 않았던 전쟁이 결국 일어났어요.
아브람은 자신이 기른 사병들과 함께 싸웠고 지켜냈고 결국 승리했어요.
어쩔 수 없는 싸움이었어요. 그런데 그 전쟁을 치르고 다녀온 후 아브람은 괴로움에 빠졌어요.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을 보았거든요.
눈 앞에 사람이 칼에 맞아 혹은 둔기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보았어요.
이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에 휩쌓이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떠했을 것 같으세요?
갑자기 전쟁이 났어요. 내 앞에 사람이 막 죽어나가요.
내가 살기 위해선 나도 무엇인가를 들고 쥐고 휘둘러야 해요.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거에요.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아브람이 괴로워하면서 엄청난 감정적 고통을 느끼던 도중 이 것 하나를 깨달아요.
“급작스럽게 나의 삶이 끝날 수 있겠다.”
지금껏 평온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과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한 후 아브람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거에요.
여러분.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내 삶에 대해 깊은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 있나요?
삶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던 순간. 혹은 삶이 이런 것이었나? 싶었던 순간 있으세요?
저는 신대원 때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었어요.
저번에 잠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저는 신대원을 다닐 때 원우회장이었어요.
1400명이나 되는 각 교회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전도사님을 대표하는 원우회장이었어요.
제가 원우회장이 되었을 때도 학교 분위기는 좋지 않았어요.
총장이 굉장히 잘못된 행동을 했기에, 목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신대원의 총장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라는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어요.
원우회가 딱 시작되고 사람들에게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20만원이었던 원우회비를 잘 사용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복지로 돌려주었어요.
무인프린트, 무인 매점 등 다양한 복지 사업을 진행했고, 또 총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학생들이 직접 받을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도 해주었어요.
처음엔 굉장히 많은 칭찬을 받았어요.
피드백도 빠르고, 사업 진행도 잘하고 또 교직원들과의 관계도 좋다는 평을 받았어요.
그러던 중 잠재되어 있던 문제였던 총장에 관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검찰에 기소가 되었어요. 기소가 된 순간부터 제 휴대폰은 불이 나기 시작했어요. 각종 언론사와 기자들에게서 온 전화였어요.
모든 언론사와 기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총장이 기소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우회장의 의견을 듣고 싶다.” 물어왔어요.
총장을 몰아내려는 정치 세력들이, 분노하는 학생들과 결탁하여 과격하게 시위를 이끌어주기를 저에게 원했어요. 그런데 저는 일단 누군가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성향일뿐더러, 적어도 신학생은 세상처럼 보도블럭을 부수고, 머리를 삭발하고 총장실은 점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최종단계이고,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 대해 주목하고 공감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하며, 함께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며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가자고 요청했어요.
금식기도를 요청 한 이후부터 저와 원우회는 행동하기를 바라는 학생들의 적이 되었어요.
지금은 그렇게 신사적으로 기도할 때가 아니라, 움직일 때라는 주장과 함께
저는 더 이상 합동 교단에서 사역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 상황들을 잘 모르는 신학과 학부생들로부터
“당신같은 사람이 전도사라니 슬프다.”
“당신에게 성경을 배우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불쌍하다"
“너 같은 사람은 목사가 되면 안된다"등의 문자를 수도 없이 받았어요.
지나가기만 하면 수군거리고 손가락질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원우회장이 되어서 명성을 얻고 싶지 않았어요.
전 단지 수많은 성도님들이 힘들게 일해서 내신 헌금으로 장학금을 받고, 원우회비를 내고 다니는 학교 이기에, 그것을 그대로 전도사님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떤 정치적 목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총장 기소사건으로 인해 한순간 저의 모든 삶이 뒤바껴버렸어요. 기독신문 일면에 시위하는 장면이 실리고, 인터넷 뉴스와 뉴스앤조이, 국민일보에도 제가 나왔어요.
심지어 지금도 유튜브에 양휘석 전도사 치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제가 발언하는 장면을 찍어서 올려놓은게 있어요. 신고해도 그거 안내려주더라구요. 찾아보지 마세요. 조회수 올려주지 마세요.
왜 연예인들이 악플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이 때 이해했어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저는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삶이란 무엇인가" 정말 많이 묻고 사색했어요.
“삶은 나만의 삶이 아니라 복합적인 모든 인간들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삶이 엉켜있는 것이다.”
“삶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제가 내린 결론이에요.
아브람도 똑같았어요. 늘 전쟁의 위협이 있었어요. 그의 삶을 다른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았어요.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서 아브람을 위협했어요.
“내 삶이 급작스럽게 끝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아브람에게 이러한 궁금증이 또 생겼어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난 당장 오늘 밤이라도 내일이라도 공격을 받아 죽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 때 아브람은 85세였어요. 후계자도 없는데 내가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급해졌어요. 뭐라도 하나님 앞에 말씀을 들어야 했어요.
그 때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셔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1절이에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너를 전쟁의 위협에서 지키는 방패이며, 앞으로 너가 받게 될 모든 복의 출발이다!” 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이 말은 아브람에게 충분하지 않았어요.
“방패 인 것도 알겠고, 복 줄 것도 알겠는데"
여전히 자신에게는 상속자가 없어요.
자신에게는 폐경기를 한참 넘긴 아내밖에 없어요.
난 85세이고 아내는 폐경기인데,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자녀가 생긴다는거지? 라는 생각이 그에게 있었어요.
아브람이 지금 듣고 싶은 말“언제 아들이 생길거야. 그 아들이 너의 후계자야"라는 말이지, “방패, 상급"이라는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가 “내 후계자는 엘리에셀"입니다. 라고 대답해요.
그러자 하나님이 단호하게 4절에서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계자이다. 라고 말씀하세요.
아브람이 원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시던 분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요.
5절이에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어떻게 보면 강요하면서 데리고 나간거에요.
여전히 아브람의 머리속에는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데리고 나가서 하늘을 보게 하시면서, 별을 세워보라고 하셨어요.
솔직히 저는 이 때 아브람이 화를 내도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아니 아들을 언제 주실거냐.” 진지하게 묻고 있는데, 뜬금없이 “방패, 상급"이라하시고, 폐경기인 아내를 두고 그녀에게 아들이 태어난다고 하고, 또 별을 세보라고 하시잖아요.
솔직히 이 정도면 화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진짜 어이없고 기가 막힌 것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데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왜 아브람은 순순히 받아드리고 믿었을까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숨이 막힌거에요.
깨알같이 박혀서 반짝반짝 빛나는 저 하늘을 보며 숨이 막힌거에요.
제가 정확하게 10년전 12월 24일 낙타를 타고 사막에 들어갔었어요. 사막 한 가운데서 잠을 자는데, 춥기도 추웠지만 보름달이 너무 환해서 잠을 잘 수 없었어요.
그리고 새벽 4시 30분이 넘어갈 때 쯤 보름달이 지기 시작했어요. 한시간이라도 자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보름달이 사라지자, 그 빛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거든요.
마치 홀로그램을 하늘에 쏘고 있는 것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넋이 나간채로 한참을 서 있었어요.
아브람이 그날 밤 보았던 별은 제가 보았던 별들 보다 더 크고 강하게 빛나며 많았을거에요.
아브람은 별을 보며 숨이 막혔을거에요. 넋이 나갔을거에요.
그리고 이것을 깨달아요.
‘난 저 우주에 비하면, 저 수많은 별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몰라서 고민하고, 아들을 언제 얻게 될지 답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 별과 세상을 지으신 분이 나의 하나님. 내 편이구나.’
6절의 “여호와를 믿었다" 라는 말은요.
이제 아브람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완벽하게 확신했다. 신뢰했다.”라는 뜻이에요.
그 누구도 별을 지은 분과 논쟁할 수 없거든요.
도대체 누가 이 세상을 지으신 분과 다이다이 떠서 이길 수 있겠어요.
아무도 못이겨요.
여호와를 완전히 믿기로 한 아브람을 향해 하나님은 “의롭다!”라고 선포하셨어요. 하지만 인간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죠. 언제나 흔들릴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동물들을 잡아오라고 하세요.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들의 배를 가르고 쪼개라고 하셔요. 그리고 그 쪼개진 동물들 사이를 지나가세요.
이 것의 의미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이 동물들처럼 반으로 쪼개질 것이라. 다는거에요. 무조건 아브람과의 약속을 이루어 내겠다! 라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손해보는 약속을 하셨어요.

하나님과 친구 사이

이제 아브람과 하나님은 친구 사이가 되었어요.
아브람은 원래 미신을 섬기던 이교도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셔서 친구로 삼아주셨어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도 친구 삼아주셨어요.
아브람과 하나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약속에 대한 아브람의 깊은 고민과 끊임없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번 이야기 했을거에요. “덮어놓고 믿지 말라고.”
“덮어놓고 믿는 것도 좋은 믿음이지만, 이제 우리는 덮어놓고 믿는 것을 넘어 궁금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해요.”
“하나님을 신뢰함 속에서 궁금증을 갖고 말씀을 읽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분을 떨어뜨리려 하는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요. 우리도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셔요.
친구와 같이 곁에 있으며, 헌신적으로 우리를 살리고 세우기 위한 그러한 친구가 되기를 원하세요.
그런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요.
첫째, 우리의 의심(불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셔요.
15장 1절 “두려워하지 말라”부터 읽어볼게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아브람처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 그리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 갖는 여러분의 원망과 의구심을 귀찮아하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시는거에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가 계속해서 연락하면 어때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만 연락했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묻지 않아서, 그 분과의 사이가 좀 데면데면하고 가깝지 않게 느껴진다 해도 우리가 묻는 것을 절대 귀찮아 하지 않으신데요.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왜 나에게 이런 고민과 어려움을 주셨는지 묻고 덤벼드는데 주저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아브람의 두 의심을 다 받아주셨어요. 아브람의 그 고민을 다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고민하며 하나님께 묻고 고백하면요.
“나는 너의 하나님이야.”라고 분명 말씀하실거에요.
이것보다 더 확실한 우리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어요.
둘째, 언제 복을 주시고, 미뤄야 할지 너무 잘 아셔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삶에 역사하시는 타이밍은 완벽 그 자체에요.
하지만 우리의 시야가 좁고, 인내심이 부족해 당장 받기를 바래 늘 실수 할뿐이에요.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순간의 불편함을 우리는 싫어해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불안해지거든요.
아브람은 25년을 기다렸어요. 75세에 하나님을 만나 100세에 아들을 낳았어요. 하나님을 믿었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해했어요.
그래서 사람의 방법으로 대안을 찾았고, 여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어요.
하나님은 알고 계셔요. 잘못된 때에 주어지는 축복은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 오신다는 것을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싶다!! 정말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복 받지 않겠다고 해도, 이미 널 위해 복이 준비되어 있으니 받아! 하면서 퍼부어 주시는 분이에요.
여러분은 어떤 축복과 응답을 기다리고 있나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나요?
기다림에 지친다면, 무엇인가 마음이 쫓기고 불안하다면요.
눈 딱 감고. “하나님!”하고 외치세요.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답답함과 불안함을 꾹꾹 눌어담고 “아! 하나님!”하고 외치세요.
짜증을 내도 좋고, 원망을 해도 좋아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그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께 발산하세요. 쏟아버리세요. 내 안의 그 답답함이 다 사라질 때까지 하나님께 토해내세요.
그렇게 홀가분해졌다면 기다리세요. 답답하면 반복하고 기다리세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한 약속, 계획을, 창조 이래로 단 한번도 취소한 적 없으세요.
단지 저와 여러분을 위해 가장 베스트한 시간을 정해놓으셨을 뿐이에요.
기다림과 답답함을 하나님께 토해내는 것 굉장히 중요해요.
하나님께 불만을 고백한다는 의미는
내 마음이 그분을 향하고 있다는 근거거든요.
셋째,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길 원하세요.
친구 사이의 우정의 기초는 신뢰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믿는다 라고 고백할 때 기뻐하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불만을 토하는 그 순간도 기뻐하세요.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요.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앞으로 나란히 해봤어요? 아 여러분은 이런 얼차레를 받지 않은 세대인가요. 휴..
앞으로 팔을 내밀거나 옆으로 오래 들고 있으면 어때요.
부들부들 떨리고 알배기죠.
하나님은 줄곧 우리를 향해 한번도 팔을 접지 않으시고 펴고 우리를 맞이하고 계셔요.
본인을 신뢰하기를 원하고 계셔요.
그 안으로 들어오기를,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셔요.
신뢰의 문제는 하나님께 정말 세상 중요한 것이에요.
아브람이 “믿었을 때" 그를 향해 “의롭다"라고 하신 이유는요.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다시 마음 먹었기 때문이에요.
하늘의 별을 보고 저 별을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이것만큼 확실한 신뢰의 표시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거에요.
아브람이 먼저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그에게 신뢰를 표현하신 것이죠.
상황과 조건은 늘 변해요.
내 생각과 계획과 무관하게 세상이 돌아가고 그로부터 의심과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신뢰하며 기다리고 계셔요.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잠시 삐딱선을 타도 하나님은 신뢰하며 기다리고 계셔요.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저와 여러분을 향한 그 신뢰는 절대 변하지 않아요.
마지막,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닌 세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다.
우리가 나의 과거의 일을 알고 되새기며 후회하고 추억에 빠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미래를 알고 계셔요.
13절을 보면 아브람의 후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복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세요.
감히 상상도 안되는 나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세요. 그것을 믿고 안믿고는 아브람의 선택이에요. 그런데 그는 그 이야기조차 신뢰해요.
자신의 후손들이 애굽에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한다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그 미래의 일에도 믿고 신뢰해요.
저와 여러분이 그 축복을 받아, 기도의 응답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상황이 되면 기꺼이 부족함 없이, 아주 차고 넘치게 복을 베푸실 거에요.
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아브람처럼 25년이 걸리수도 있어요.
전 중 3 때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것이 있어요. 아직 이뤄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약속의 응답이 조금씩 보이고 있음을 느껴요. 저도 21년째 기다리고 있어요.
기다림을 통한 성숙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때론 고통스러울거에요.
그 고통을 여러분 혼자 감내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꼭 기억하세요.
기다림에 지쳐 울부짖고 넘어지거나, 신뢰하지 못해 흔들리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고통스러워요. 그 분의 마음은 찢어질거에요.
여러분 곁에서 함께 울고 있을 것이고, 여러분을 부축하거나 업고 그 길을 걷도록 해주실거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에요. 우리를 돕기 원하세요.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섬기고 사랑을 주고 싶어하시고, 곁에 있고 싶어 하세요.
의심과 불안을 하나님께 쏟아내면서 하나님을 찾고
그 속에서 여러분을 신뢰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나를 일으켜 세워주실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께 들을 수 있기를 바래요.
“하나님이 내 친구"라는 고백을 이루어내는 이번 한주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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