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서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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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람의 딜레마 2. 사람의 방법 3. 죄의 결과 4. 무의미한 서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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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딜레마

요즘 저와 청년들은 매주 아브람. 그의 믿음의 여정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네번째 시간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만 사실 잘 모르는 아브람의 믿음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사랑하는 우리 청년들과 또 제2가족들의 삶에 지침이 되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앞 내용이 궁금하다면 youtube에 가온누리 청년부를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 인생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혹시 부부싸움 혹은 연인들끼리 싸움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없으시군요. 있으셔야 하는데.. 있으셔야 오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부부싸움 한적 없으세요? 진짜로? 그럼 없더라도 있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느끼던 아브람의 가정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이 문제만 해결되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은데,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그들이 가진 문제는 바로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별과 같은 수많은 자손을 주겠다 말씀하셨고, 그의 몸에서 난 자녀를 주겠다고 여러번 말씀하셨는데 아직 그에겐 자녀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아브람은 태어나게 될 자녀만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수년을 기다려도 응답은 오지 않았죠.
그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자녀를 주겠다! 라고 말씀하신 그 약속을 알고 있었어요.
아브람과 사라가 공동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소식은 좀 있나요? 그래서 언제 태어나요?”
“자녀가 생겼나요?”
아기를 가졌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을거에요.
“아직이요.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대답했겠죠.
하지만 지속적인 질문 앞에 점점 사래의 마음에 병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그 압박감이 엄청났을거에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녀에게 정말 엄청나게 좋은 생각이 딱 떠올랐어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대리모를 사용하자!.
그녀가 생각했을 때 너무 좋은 계획이었어요.
그녀가 살던 그 지역에서는 다 그렇게, 종을 통해 아이를 낳고 입양하여 상속자로 세우고 있었거든요.
아내의 종을 후처로 삼고, 태어난 아이를 향해 ‘너는 내 아들이야'라고 말하면 끝이었어요.
너무 좋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마자, 자신을 대신 해 아이를 낳아줄 사람을 찾아요.
그렇게 선택된 사람이? 하갈이었어요.
애굽 왕에게 잡혀갔을 때 받았던 선물들 안에 하갈이라는 젊은 여인이 있었어요.
사래가 생각했을 때, 자신과 다르게 아브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씨를 통해 후계자를 주겠다고 하셨지, 그 아이의 어머니가 사래다! 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이제 사래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생각했어요.
“나를 통해 낳는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왜 내가 기다렸을까?”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이지!”
“늙으면 애 키우는 것도 어려운데 차라리 잘 됐다! 정말 좋은 생각이다!” 라는 결론을 내려요.
그리고 아브람에게 달려가 그를 설득합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지금까지 사래가 생각하고 결론을 내고 행동을 하던 이 과정 속에 하나님이 있었나요?
정말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면서!
제물을 올려드리며 예배도 기도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지 않어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넋두리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아요.
하나님에게 직접 약속을 받았던 아브람 역시 기가 막힌 그녀의 생각에 동의해요.
상황을 합리화 하는거죠.
‘부정적인 면이 있는 사건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행동'
‘상처나 실망거리를 회피하기 위해 구실을 만들어 다른 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을 합리화라고 하잖아요?.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기로 결정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합리화하기 시작해요.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하갈은 임신하지 않을거에요.”
이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갈은 임신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임신하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할게요.
묻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관습을 따르면서, 그 결정과 결과를 하나님께 미루고 있어요.

진리와 결과

정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이 결정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어요.
4절의 말씀처럼 종 하갈이 주인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했거든요.
당시 불임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귀중한 자원을 소모하는 존재, 공동체에 아무 것도 기여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불임 여성이었고, 사래 였습니다.
4절에서 사용된 멸시라는 단어는 하찮게 여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종 하갈이 주인 사래를 아주 하찮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아무리 아이를 가졌어도, 그녀의 신분은 종인데 어떻게 주인을 멸시하고 업신여기고 하찮게 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일거에요.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고대의 기준은 지금과 달랐어요.
종이 아이를 갖게되면, 그 때부터 주인보다 더 높은 사회 계급을 누릴 수 있었어요.
후처로 삼으려던 하갈이 아이를 가졌어요.
이제 그녀는 후처가 아닌 사래의 자리 그 이상을 넘볼 수 있게 된거죠.
그래서 하갈은 사래를 하찮게 여겼어요.
아브람과 사래는 이러한 결말을 원하지 않았을거에요.
그저 대리모를 삼아 아이를 낳게 하려 했을 뿐인데
정말 좋아보였던 그 계획이 실패의 결과로 돌아오게 된거죠.
죄는 언제나 관계의 어려움을 가져오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시작한 ‘대리모 프로젝트' 아브람과 사래가, 사래와 하갈의 사이 깨지도록 하는 죄의 결과로 돌아왔어요.
분명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자고 한 것은 사래였는데, 그녀는 아브람의 탓하기 시작해요.
5절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아브람은 사래의 제안을 받아드렸을 뿐인데, 사래는 이 모든 일들이 당신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탓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브람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6절입니다.
“당신의 것이니 당신 맘대로 하라"
“당신이 이렇게 하자고 한거잖아. 왜 나한테 그러는거야?”
“어차피 하갈은 당신의 종이야. 당신의 것이라고.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
행복했던가정은 전쟁터가 되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던 이들이 말싸움 도중 갑자기 하나님을 언급해요.
5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한다!”
끝까지 상황을 합리화시키고 있는거에요.
본인들 마음대로 해놓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라며 자신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돌아보지 않아요.
종에게 멸시 당한 것이 너무 힘들었는지 사래는 그 이상으로 복수해요. 하갈이 도망갈 정도로 학대해요.
아브람의 가정이 망가지기 시작해요.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아 대를 이으려 했는데, 그 아이를 가진 하갈이 도망갔어요.
얻은 것 하나 없이, 모두에게 상처만 남았어요.
하갈이 도망 간 광야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고, 아기를 임신 한 그녀를 그 광야에서 도와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하갈. 억울하지 않았을까요?
하갈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죠.
평소와 똑같이 주인을 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를 대신 낳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갑자기 합방을 하게 됐고, 아이를 가졌을 뿐이에요.
물론 하갈이 잘못한 부분 분명 있죠.
사래가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주인을 하찮게 여긴 것은 잘못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을 원한 적 없어요.
대신 아이를 낳아주겠다 말했던 적도 없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어 아이를 대신 가졌을 뿐이에요.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광야에서 누군가에 의해 구함을 받던지 혹은 죽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어요.
우린 하갈이 서있는 이 광야를 우리가 경험한 적이 없어서 그녀가 처한 위험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상상할 수 없는데요.
간접 체험을 시켜드리기 위해 제가 사막에서 경험했던 일을 잠시 나누려 해요.
낙타를 타고 4-5시간 사막 깊숙히 들어가 준비된 베이스 캠프에 도착 한 후, 낙타 몰이꾼들은 불을 피워주고 저희 곁을 떠났어요.
저와 일행들은 저녁녘부터 우리끼리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거죠.
끝없이 펼쳐진 모래와 듬성 듬성 세워진 선인장 혹은 나무들 외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막에서의 하룻밤은 완전 낭만적이었어요.
사막에서 잠을 자는 경험은 쉽게 하는 것 아니잖아요.
거기다 캠프파이어처럼 불도 피우고 고구마도 넣어서 먹었어요.
사막에서 잔다는 것도 즐거웠고 또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낭만을 즐긴다는 것은 정말 꽤나 낭만적이었어요.
모닥불이 꺼져가고 밤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요.
(쉬고)
낭만이 사라졌어요.
환한 달빛이 있어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긴 했지만, 사막의 밤은 정말 스산했거든요.
45도에 육박하던 온도가 뚝 떨어져서 영하로 내려 가자마자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하는데요.
몸을 따뜻하게 해줄 모닥불도 없고, 주위에 낙타 몰이꾼도 없어요.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물도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인식되는 순간부터 낭만의 ㄴ자도 보이지 않았고, 그냥 무서웠어요.
사막에서 자는 여행객들을 공격해 물건들을 가져가는 강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터라 저와 일행들은 멀리가지 않고 모여있기로 했어요.
여러분 혹시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생리현상이에요.
그렇게 무서운 상황에도 생리현상이 생기는데 못 참겠더라구요.
끝까지 참다가 해결하려고 일어나 한 3-400m정도 앞에 있는 나무로 걸어갔고, 해결하고 돌아섰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거에요.
분명 직진해서 나무로 걸어왔는데, 아무리 직진을 해도 일행들도 보이지 않고 베이스 캠프도 보이지 않는거에요.
깜깜한 모래 사막 위에 혼자 서서 식은땀을 막 흘리고 있던 그 때.
꽤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 때
누군가 제 뒤에서 말을 걸었어요.
진짜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돌아섰는데, 말을 건 사람은 베이스 캠프에 저희를 데려다 주었던 낙타몰이꾼이었어요.
“사막에서는 길을 잃어버리기 정말 쉽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되며, 밤 사막은 정말 위험하다"라는 말과 함께 저를 베이스 캠프로 데려다 주었어.
온통 모래밖에 없었는데, 그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또 어떻게 저를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의 도움으로 밤 사막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갈이 서 있는 그 광야. 사막은 제가 경험한 사막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곳이었어요.
제가 그날 밤 느꼈던 공포와는 차원이 다른 무서운 그 곳에, 아기를 가진 여인이 광야에 있는거에요.
성경은 그녀가 서있던 곳 ‘샘물 곁 곧 술길 샘’이라 말하는데, 이 곳은 상인들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던 길이에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기도 했지만, 상인들을 노리는 사람들도 존재했던 곳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늘 사람이 있는 장소도 아니었어요.
‘술'에 혼자 있는 그녀에게, 갑자기 다가왔던 낙타몰이꾼 처럼, 갑작스럽게 여호와의 사자가 다가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여주인에게 복종하라.
너의 자녀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너의 자녀는 들나귀와 같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라. 여주인에게 복종하라.
여주인에게 학대를 받다 참지 못해 뛰쳐나왔는데 다시 들어가서 그녀를 섬기고 복종하라는 이 말은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웠을 거에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을 통해 하갈은 희망을 가져요.
“너의 자녀의 수가 많아질 것이며, 들나귀와 같이 될 것"이다.
‘들나귀와 같이 된다.’는 말은 장막에 거주하는 유목민의 자유로운 생활을 의미하는데요.
이스마엘이 나중에 광야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것이다.
먹을 것을 확보하는 싸움이 벌어지는 광야를 자유롭게 돌아다닐만큼
뛰어난 용사가 되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먼 훗날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고 있는 그 ‘술' 지역을 이스마엘이 지배하고 다스리게 돼요.
아이를 가진 채 집에서 나온 하갈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였어요.
아브람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았어요.
삶의 이유와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던 그 때, 하나님을 만났어요.
주인 아브람에게 들었던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잃어버렸던 소망을 가진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해요.
듣기만 했던 하나님,
주인 아브람만의 하나님이
하갈의 하나님. 하갈의 구세주. 하갈의 전부가 되었어요.
그녀는 그 곳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샘"이라는 뜻의 브엘라헤로이라 부르기로 해요.

무의미한 서두름

아브람과 사래는 무의미한 서두름의 시간을 선택했어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을 앞당길 수 없는데, 서둘러 일을 진행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책임을 돌렸어요.
자신들의 계획표에 맞춰 움직이라 하나님께 요구했어요.
그 결과 가정은 깨어졌고, 이스마엘이 태어났어요.
그 후 이삭이 태어날 때까지 14년을 더 기다렸어요.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도 하나님의 계획을 절대 앞당길 수 없어요.
내가 원하는 때에 맞춰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요.
우리도 이 사실을 알아요. 그런데 머리로만 알아요. 가슴으로 믿지 않아요.
내 경험과 방법을 의지해서 일을 진행 할 때가 더 많아요.
그러면서 아브람과 사래처럼 우리의 서두름을 합리화해요.
하나님이 해주실거야.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인데 책임져주지 않으시겠어?
나의 무의미한 서두름을 통해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서두르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릴 때가 많아요.
하나님은 그런 무의미한 서두름 앞에 반응하지 않으실거에요.
어떤 응답도 하지 않으실거에요.
“우리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두른거잖아요.
하나님을 위해 한다 말하고, 나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 욕심. 생각을 앞세웠잖아요.
여호와를 신뢰하기 보다,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놓쳐버릴 것 같으니까
빨리 선택해야 일이 진행될 것 같으니까.
합리화 시키면서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거죠.
“하나님 어서 대답해 주세요! 이거 맞죠?”
“어서요! 당장 응답해 주세요!”
“급합니다. 왜 이렇게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충분히 기다렸는데,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세요!!”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을만큼 간절했던 아브람과 사래의 이 서두름.
어쩌면 저와 여러분의 서두름 아닐까요?
“나를 위해 일하시고 응답하실 것은 알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일단 하겠다!” 라 기도했던 아브람과 같은 그 모습 우리의 모습 이었지 않나요?
기도하며 기다리는 우리 처하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
나의 생각대로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 아닐까?
내 생각대로 하나님이 일하실거야!
라고 생각하는거에요.
혹시 이런 유혹에 빠져 아브람과 사래처럼 상황을 합리화 하며 무의미한 서두름 앞에 계시다면.
다음 네가지를 묵상하며 한번 더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조금 천천히 걷는거에요.
기도하며 기다리다 보면 참기 어려운 순간이 딱 올 때가 있어요.
선택의 순간이 점점 다가올 때,
그래서 빨리 서둘러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 그 때,
그 순간 딱 제동을 거는거에요.
일을 서두르면 그르칠 수 있으니 급하더라도 차근차근 처리 해 나가다보면 어느새 완성할 수 있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라는 속담 알고 있을거에요.
이 속담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은혜가 되는 속담이라 생각해요.
서둘러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질 때, 제동을 딱 걸고 그 자리를 벗어나세요.
급할수록 한번만 더 돌아가보는거에요.
잠시 벗어나 홀로 기도할 시간을 확보하세요.
물론 다급하기 때문에 기도하기 어려울 수 있고, 기도한다해도 아무말 대잔치가 되겠죠.
하지만 해야 해요.
다급한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기를, 그 평안을 통해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만약 기도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휴대폰을 열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지금 이 시간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제가 이번주에 그랬어요.
극심한 고민 끝에 선택을 하려는 순간.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멈췄고, 휴대폰을 열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요청을 했어요.
그리고 그 후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어요.
그 시기를 놓쳐도 세상. 망하지 않더라구요.
기도하느라 시기를 놓친다면 오히려 잘된거에요.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최고의 시기였을 뿐 저와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그 시기. 그 때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거든요.
둘째, 하나님께 더 인내하고, 더 지혜롭고, 더 자제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세요.
물론 이렇게 기도해오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고 견디기 어렵다면요.
계속 간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요.
이렇게 간구하세요.
“나의 영혼이 잠잠해 질 수 있기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이 걱정을 몰아 낼 수 있도록"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말씀하심을 깨닫도록"
이렇게 간구할 때 우리는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표현할 수 있는 기회에요.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좌절하는 그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고백하세요.
물론 하나님 다 알고 계시죠.
하지만 자세하게 말해야 해요.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굉장히 훌륭한 방법이면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해결책이거든요.
기도로 여러분이 누구인가를 온전히. 자세하게 하나님께 표현하세요.
기도로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를 빠짐없이 하나님께 다 드러내세요.
그래야 내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으로 선택 할 수 있어요.
셋째, 기다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20대가 되었던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어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많은 생각을 하라.”
“다양한 변수도 생각하고 할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하라.
“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해두면, 실제 그 상황이 닥쳤을 때 헤쳐 나갈 수 있다.”
저는 이 것을 우리의 신앙에도 대입할 수 있다 생각해요.
선택하는 것 좋아요. 급하면 선택해야죠.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으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무엇인지 생각하는거에요.
“내가 기도하느라 이 타이밍을 놓쳤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다릴 때 발생하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만큼 행동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어요. 그 때 이 질문을 또 던지는거에요.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브람과 사래가 하갈을 선택하지 않고 기다렸을 때 발생할 최악의 결과‘아이가 없는 현 상황 유지'였어요.
그들은 좋은 생각이라 여겼고, 빨리 선택해야 한다며 서둘렀어요.
정말 좋은 방법이 있으니,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뜻이다! 생각 했어요.
그 결과 약속의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은 끝없는 분쟁을 겪어야 했고, 이스마엘은 또 집에서 쫓겨나야 했어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 해도, 우리의 인생 무너지지 않습니다.
넷째, 내 결정으로 영향을 받게 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거에요.
하나님의 타이밍보다 앞서 움직이면 생각하지 못한 피해가 생겨요.
아브람과 사래가 그랬어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먼저 일한 결과 한 젊은 여인의 인생이 영원히 달라졌어요.
그녀의 어린 아들은 적대적으로 분열된 가정에서 태어나게 되었어요.
본인들의 생각이 맞다 생각해 움직였는데, 그 결과 가만히 있던 하갈이 괴로워졌어요.
정말 부당하게 상처를 받았어요.
사랑하는 청년들 그리고 제2가족 여러분.
응답이 늦어도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응답을 기다리는 것.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삶에 가장 필수적인 훈련이에요.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요.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핫바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아가는 1분 30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요.
주문하면 하루만에 오는 쿠팡의 로켓배송도 못참아서 그보다 더 빠른 제트배송까지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요.
세상은 우리에게 좀 효율적으로 움직이라 말해요.
기다리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고, 미련한 행동 그만하고 좀 효율적으로 살라고 말해요.
하나님 백성의 삶에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하나 있어요.
기다릴수록, 답답하지만 기다리면서 매달릴수록, 더 많은 복과 은혜를 기대하게 된다는거에요.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면서 점점 더 성숙해지는 은혜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로켓배송과 같은 응답도, 제트배송과 같은 일하심?
필요 없어요.
기다리는 그 순간마져도 충분하다 느낄거니까요.
왜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할까요?
우리의 삶에 끝이 있다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삶이 짧다고 생각하는거죠.
삶은 짧은데, 언제까지 왜 무슨 이유로 기다리고 싶겠어요.
기다리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라는 그 생각이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를 잡고 있는거에요.
정신없이 변하고 달려가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면, 나도 같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어리석다 느껴지는거에요.
내 옆에 사람이 저만큼 뛰고 있기 때문에, 조급함을 느끼는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의미 없이 서두르며 살아요.
우선 멈추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
하나님의 손을 깊이 생각하세요.
하나님은 우리 도움 필요 없으세요.
오직 내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에요.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우리 같이 조금 천천히 걸어봐요.
더 인내하고 더 지혜롭고 더 자제하게 해달라고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는거에요.
혼자는 힘들어요. 그래서 곁에 있는 동역자가 필요해요.
그리고 함께 걷도록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필요해요.
조금 천천히 걷고
하나님께 더 인내하고 더 지혜롭고 더 자제하게 해달라 간구하며
기다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려보고
나의 결정으로 영향을 받게 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기.
이 4가지를 꼭 기억하고,
그것을 삶으로 적용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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