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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d like King David

Notes & Transcripts

누구를 닮고 싶은가?

내가 멋진 사람이 되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이 내가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분명할 때 우리는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형 외과를 찾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사진을 들고 와서 이런 코, 이런 눈, 이런 입술로 성형을 해 달라고 합니다. 자기 닮고 싶은 모습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본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이것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누군가를 '닮고 싶은 본능’을 심어 놓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형상을 닮고, 나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어떤 사람을 닮고자 하는 본능적인 성향이 우리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에게 누군가를 닮고 싶은 대상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은 원래 닮고자 하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닮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내 자신이 목표를 잃고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닮고자 하는 대상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의 기록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열왕기’라고 부릅니다. 이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 정치인의 표준을 ‘다윗으로 삼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다윗처럼 정치를 해야 하고, 다윗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잘 다스린 왕들에게는 ‘다윗처럼 행했다’ 혹은 ‘다윗의 길로 걸었다’고 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는 표현은 열왕기의 역사가가 가장 훌륭하게 정치를 한 왕들에게 부여하는 훈장과 같습니다. 열왕기의 역사 기록에는 이런 평가에 도달한 사람이 몇 사람있습니다. 종교 개혁을 이루어 냈던 요시아왕(왕하 22:2)이 있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사왕 (왕상 15:11)도, 다윗과 같이 정치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행하는 것, 다윗처럼 정치를 하고, 다윗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며, 삶의 표준일까?

사람들에게 누군가를 보고 그를 닮으려는 삶의 표준이 있다면, 우리도 또한 누군가에게 삶의 표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또 되어야 합니다. 가장 가깝게는 우리 자식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를 본받습니다. 배우자 상호 간에 서로 닮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부부는 똑같아’라는 말을 합니다. 이처럼 내 자녀가, 내 배우자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나를 보고 닮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이 나를 닮고 싶은 사람이 될까요?

오늘 우리는 바로 이점을 다윗처럼 행했다는 아사 왕의 삶의 표준을 보면서 생각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다윗과 아사에게 본받아야 할 점들

아사 왕이 다윗과 비교했을 때 다윗처럼 살았다는 첫번째 특징은 '다윗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직이란 기준’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잠언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길을 옳게 보아도 그 길을 인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도 어느 정도 참작은 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도 어떤 사람의 모든 것들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사람의 은밀한 삶이나, 은밀한 마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직함이나, 신실함이나,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되는 삶이란, 다윗의 삶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사는 삶’ 곧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은 엄밀히 ‘하나님 얼굴 앞에서’라는 관용어로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산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표준이 될 만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낱낱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낱낱이 드러나면 우리는 정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아마도 ‘올드보이’라는 유명한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2003년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상으로 미국에서도 꽤 알려진 작품입니다. 얼마 전에 유투브에서는 이 올드보이를 패러디한 비디오가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으니까 이 영화가 얼마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회사원이 이유도 모른 채 납치되어 15년간 감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감금 생활을 하던 중에 그는 우연히 작은 쇳조각을 손에 넣게 됩니다. 그 쇳조각을 가지고 그는 감시자의 눈을 피하여 벽에 구멍을 뚦기 시작했습니다. 발각되지 않도록 주도 면밀하게 작업을 하고 구멍의 흔적을 철저하게 감추었습니다. 수년 동안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그는 밖으로 통하는 구멍을 완성했습니다. 드디어 그가 탈출을 감행하기 직전, 그는 영문도 모르게 풀려나게 됩니다. 풀려난 주인공은 복수하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감금되었던 장소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다가 마침내 자기가 감금되었던 문제의 건물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문을 뜯고 감시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무실에 침입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 십대의 모니터였습니다. 각 방에 비밀리에 숨겨진 감시 카메라에서 수감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수년간 그렇게 비밀리에 구멍을 뚫었던 그의 행동은 그 만의 비밀이었을 뿐, 그것은 결코 비밀이 아니고, 자기를 감시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 누군가가 너를 보고 있다면 우리들은 늘 우리의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남이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뒷 구멍을 파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정보화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개인 정보의 누출입니다. 지금도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우리 개인의 삶이 낱낱이 노출이 됩니다. 인공 위성이 공중에 높이 떠 있으니까 마치 개미를 보듯이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전자 칩을 우리 몸에 찍는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숨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을 올드보이에서 보여 주고자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공위성보다 더 정밀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았던 다윗왕처럼, 아사왕이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사 왕에 대하여 이런 평가가 내려진 것은 그가 유다를 통치하면서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나라로 개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롯 할머니라고 할 찌라도 그가 아세라를 섬기는 신상을 만들자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우상을 토막 내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릴 정도로 나라를 개혁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남창들을 모조리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주를 사모하는 마음이 평생 한결 같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아사 왕의 삶 때문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산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칭송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으로 기록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늘 하나님 앞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하는 삶

두번 째로 다윗처럼 살아가는 삶이란 ‘언제나 하나님께 구하는 삶’입니다. 아사의 개혁 운동의 배후에는 선지자 아사랴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사랴는 아사 왕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도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15:2)”.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모델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일평생 하나님과 함께 하며,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열왕기 역사가가 유다의 아사왕에게 내린 ‘다윗처럼 살았다’는 평가는 아사 왕의 실수에 대하여 상당한 아량을 베푼 결과였습니다. 성경에서 열왕들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 말고 역대기라는 역사서도 있습니다. 이 역대기를 기록한 역사가는 아사왕에 대하여 그렇게 아량을 베풀지 않습니다. 역대기의 역사가는 아사 왕에 대하여 그의 말년에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고, 또 병이 들었으되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은 아사가 그의 통치 후기에 다윗 왕처럼 산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초창기에는 늘 하나님께 구했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후기에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역대기 15장 7절 이하(2chronicles 15:7)에 보면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전쟁을 할 때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기 위하여 아람 군대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께 모든 어려움을 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니라는 선지자가 하나님은 전심 전력으로 주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 주시고,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과 같이 강한 군대도 주를 의지하니까 주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셨는데, 왜 이번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군대를 의지하느냐고 고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아사 왕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군과의 전쟁이란 어떤 전쟁이었습니까? 아사 왕의 통치 초기에 일어난 전쟁입니다. 아사 왕의 통치 초기에는 어려움이 올 때 늘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사왕과 함께 한 증거는 애굽과의 전쟁입니다. 당시 애굽 군대, 곧 구스 (에티오피아)군의 전력과 유다의 전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애굽의 세라 군대가 보병이 100만에다가 전차부대가 3백승이었다면 아사왕의 군대는 그 절반인 58만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 초기에 에티오피아 군대는 유다의 내륙 깊숙이 쳐들어와 유다 서남부인 아둘람과 라기스 사이에 있는 마레사 계곡으로 질풍과 같이 진입하였습니다. 턱없이 약한 아사 왕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아주 유명한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역대하 14:11).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50만의 군대가 백만의 군대를 이긴 것이다. 도무지 인간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 전쟁에서 아사왕은 크게 이겨 불레셋까지 쫓아가서 많은 전리품과 그 모든 성읍을 점령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성경 곳곳에는 전쟁의 승리는 군대의 숫자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아사 왕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았다는 표현이 가능한 것은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에서 도와줄 이는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어떤 순간에도, 어떤 삶의 처지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고,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자기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거나, 돈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의지해서 실패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돈의 힘만 의지하는 사람치고, 인간적인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은 가장 겸손하고, 인간적이고, 관계에서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본받을 것인가?

만약 통치자의 모범, 군왕의 모범으로 다윗이 그 기준이었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현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본받아야 할 삶의 표준, 인간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뿐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교회의 목표는 예수 닮는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가? 예수님은 다윗보다 훨씬 더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다윗과 아사가 어려울 때, 삶의 순간 순간에 하나님께 구하였다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도록 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분, 우리가 늘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함께 가져야 하고, 그 분이 생각하시고, 사고하셨던 것들을 함께 생각하며, 그 분이 살았던 삶의 방법들을 본받고 그 분처럼 살아야 합니다.

결론: 삶의 이정표가 되라.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기 원하십니다. 아사왕의 시대에 삶의 표준이 다윗이었다면, 우리들의 시대의 삶의 표준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언제나 ‘받음’과 ‘건네줌의 형식’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처럼 또한 이런 삶을 내 후대의 사람들, 내 자식들의 세대에 또한 보여 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면,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의 삶의 모델이 됩니다. 이것이 ‘받음과 건네줌의 형식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을 사람들이 닮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생각을 닮고, 비전을 닮고, 말을 닮고, 행동을 닮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바로 그런 우리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집사님처럼, 저 장로님처럼, 저 권사님처럼 살아야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살아있는 예수님을 닮고 싶어하고, 그를 모델로 삼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뒷 세대의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박세리 선수가 골프를 통해서 인생 역전을 이루어냈을 때 많은 어린 아이들이 나도 ‘박세리 선수처럼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박세리 kids’ 박세리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세계 최고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또 ‘나도 김연아 선수처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의 길을 인도하는 것을 ‘이정표’라고 부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 일지’에는 백범이 지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시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눈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될찌니….” 굳이, 부연하자면, 눈길을 걸을 때 이 곳 저곳에 발자국을 남겨 놓으면 뒤 따라오는 이들이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난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 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걸어가는 이 인생 길이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됩니다. 내가 방황하면서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겼다면, 내 뒤를 따라오는 내 아들들, 내 딸들,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내 동반자들도 방황하게 됩니다. 그들은 나를 바라다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의 삶의 모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의 모델일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고, 언제나 하나님께 구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 예수님을 닮는 삶, 그 분의 비전, 그 분의 생각, 그 분의 행위 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 뒤에 오는 내 아들들에게 본받고 싶은 삶의 모델이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 낮에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예수님의 온 몸을 내어주신, 그 예수님처럼 살아야지...바울이나 베드로처럼 살아야지 하는 결단을 하면서 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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