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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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함 2. 무시당하는 자 3.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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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훗의 등장

이스라엘은 옷니엘이 사사로 있을 때 40년간 평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평안한 시간에 이스라엘을 다시 악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또”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똑같은 죄를 지었을까요?
평안한 시간을 보내는동안, 하나님을 잊고 “나 자신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착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 하나님 앞에 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또" “똑같은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면서 그들에게 또다른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강한 사사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사사를 원하던 그 때, “에훗"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에훗은 사사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주목 받던 사람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왼손잡이였습니다.
어쩌면 사사기 20장 16절에 기록된 것처럼 “베냐민 지파 중 물매를 던지는 잘 훈련된 왼손잡이”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문에 등장하는 에훗은 잘 훈련된 사람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왼손잡이”의 원문을 찾아보니 “오른손에 제한이 있는 자”라는 단어가 사용 되었더라구요.
에훗은 오른손에 장애가 있던지, 아니면 능숙하게 사용하기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죠.
오른손잡이가 아닌 왼손잡이. 오른손에 제한이 있는 사람인 에훗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에훗의 앞에 나타났던 옷니엘과 비교하면 에훗은 작아보입니다.
옷니엘은 크고 강한 아낙 자손의 땅을 빼앗은 갈렙의 조카입니다.
그는 거대했던 아낙 자손의 본거지였던 기럇 세벨을 공격해 점령합니다. 아낙 자손은 이스라엘 사람들 스스로가 메뚜기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그런 민족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던 그 민족을 옷니엘이 공략해냈습니다. 옷니엘처럼 용감하고 크고 강한 사람이 사사라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등장하는 에훗은 옷니엘과 달랐습니다. 에훗에 대한 묘사는 왼손잡이 하나입니다.
베냐민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입니다. 이 것만 보아도 베냐민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 오른손 사용이 뛰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왼손잡이. 누가 봐도 약하고 멸시 받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람.
”설마 쟤는 아닐 거야. 에글론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에훗이지만, 쟤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에훗은 이스라엘을 대신해 공물을 바치는 자였습니다.
15절을 보면 “그를 통하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오른손에 제한이 있는 에훗을 통하여 공물을 바칩니다.
이것은 어쩌면 이스라엘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굴복 당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가장 가능성 없고 약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죠.
에훗이 공물을 바치는 자는 에글론입니다. 에글론은 "비둔한 자"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비둔하다.”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느낌이 딱 오지 않나요?
비둔하다는 뚱뚱하거나 옷을 두껍게 입어서 움직이는 것이 둔하다. 라는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처음 침략했을 때의 에글론의 모습은 지금처럼 비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점령했던 땅은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 성이 어떤 성이죠? 여리고는 종려나무 성읍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역사하심을. 살아계심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곳입니다.
40년간의 기나긴 광야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시작이 된 첫 전쟁이 바로 여리고 전투였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그리고 마지막 날은 일곱 바퀴를 돌고 큰 함성을 지르던 그들의 눈에 철옹성 같았던, 불가능해보였던 여리고 성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길갈에 돌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이 고난을 겪고 있는 세대들은 그 사건에 대해 그 윗 세대들에게서 귀에 딱쟁이가 지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가 있는 기념비적인 도시가 이방인. 에글론에 의해 함락 되었습니다. 여리고를 공격한 에글론은 지금처럼 비둔한 모습이 아닌 전투에 능한 장수였을 것입니다.
에글론이라는 이름의 뜻은 황소입니다. 황소는 강하고 용맹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죠. 에글론은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 처음에는 날렵하고 강하고 용맹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정복 후 18년이라는 평안한 생활은 날렵했던 그를 비둔하게 만들었습니다. 맨 처음 점령하고 가졌던 그 승리와 기쁨 등을 다 잊어버리고 평안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이스라엘인들과 에글론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겠나요?
이들의 공통점은 처음 마음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현실에 적응하면서, 편안함에 속아 겸손함을 잃어갔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회복이 너무나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그 감사함을 잊었습니다.

삶의 변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에훗이 우편 안쪽 허벅지에 약 40cm나 되는 한 규빗의 칼을 숨깁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글론에게 “은밀한 일”. 즉,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알려줄 것이 있다 말합니다.
에글론은 그를 가까이 부릅니다. 우리 성경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엘로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글론이 은밀한 일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에훗을 가까이 부른 것이 아닙니다. ‘엘로힘’은 이 당시에 하나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토착 신들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에글론은 ”엘로힘의 말“이라는 것에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들의 말. 바로 신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의 은밀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조사해보니, “주위 나라의 군사 정보나 재물 혹은 그 나라의 국가 기밀”등을 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에글론은 그러한 정보들을 기대했고 가까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칼에 찔림을 당합니다.
아무도 에훗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에글론이 비둔해도 강하고 용맹한 용사였습니다. 그가 오른손에 제한이 있는 왼손잡이 에훗에게 당할 것이라는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에훗이 찌른 칼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18년이라는 시간이 에글론에게 얼마나 평안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입니다. 기름에 칼날이 엉켜서 빠지지 않은 것이죠.
칼에 찔려 죽어가는 에글론을 두고 에훗은 재빠르게 자리를 피합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에훗이 하나님 앞에 사용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의 가난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에훗과 같은 그 겸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믿음. 그 마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자를 들어 쓰셔 강하게 만드십니다.”
편안함에 속아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에훗처럼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필요한 자리에서 사용받고 섬기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과 우리들의 모든 자녀들이 이렇게 겸손한 믿음을 갖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일하신 경험이 있다면 그 상황을 가족과 함께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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