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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섭리 2. 어울리지 않는 여자 3. 회복의 시간 4. 내 삶의 헤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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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

여러분 삶에 “우연"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다면 왜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는 왜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연"이라는 개념이 적용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은 없어요.
우리에게는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요.
그럼 섭리는 무엇일까요? 섭리를 맞추는 청년이 있으면 쿠폰 쏠게요.
섭리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애정으로 그의 뜻을 이루는 활동을 이야기해요.
즉 다시 말해서,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고 계신 상태를 말해요.
여러분 휴대폰 다 있을거에요.
휴대폰 왜 가지고 다니나요? 스마트폰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나요?
맞아요. 그럼 스마트폰에서 유심을 빼면 어떻게 될까요?
전 이전에 쓰던 아이폰 11이 있어요. 거기에는 유심이 없어요. 그래서 와이파이가 없으면 사진 촬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스마트폰의 목적이 연락을 하고 정보를 찾고 주고받는 것인데, 사진 촬영 외에 큰 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마트폰이 아니겠죠. 그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이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이 있어요. 그 목적대로 살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겠죠.
마치 유심 없는 스마트폰 처럼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반쪽짜리 혹은 정말 바보 같은 인생이 되고 말거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에게 그 목적을 계속 상기시켜 주셔야 할 필요성을 느끼셨어요.
우리가 이상한 길로 가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야겠다는 강한 마음을 먹으셨어요.
그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구원해주셨고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우리를 불러 주신거에요.
그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에요.
우리의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삶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찾게 된 것이죠.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우연"이라는 것이 있다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 죄를 용서 받고 자녀가 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겪으셨던 끔찍한 모든 일,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부활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것이죠.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의미 없음으로 만드는 말“우연을 믿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계셔요.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셔요.
제가 전역 후에 복학을 하고 1년 정도 학교를 다니고 다시 휴학을 했어요.
청년부 목사님이셨던 선교사님께서 저에게, “곧 필리핀으로 파송을 받아 가는데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하고 뭐하나 잘하는 것 없으면서 “알겠습니다!”라고 덜컥 대답을 해버렸어요.
“저 목사님 따라 필리핀을 가려고 해요. 기도해주세요.”라고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 “저 필리핀 갑니다.”라고 그냥 통보를 해버렸어요.
부모님도 굉장히 어이없고 당황하셨을거에요.
돈도 없고 보낼 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 갑자기 필리핀을 간다고 하니까 뭐 이런 놈이 다 있을까 싶으셨을거에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버지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필리핀을 가려거든 편입을 해서 그 곳에 오래 있어라. 그렇게 해야 갈 수 있다.”
전 또 여기에서 허세를 부렸죠. “아 네 편입 할 수 있죠. 그렇게 할게요"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2학기를 시작했어요.
여러분 제가 공부를 열심히 잘 했을까요?
놉. 절대 아니죠. 전 “필리핀에 가서 그 나라 대학에 편입을 할 계획"인데 뭐하러 공부하겠어요.
편입하면 더 이상 이 학교 안다닐거야 라는 생각에 마음이 완전 붕 떠서 공부가 잘 되지 않았어요.
열심히 놀았어요. 수업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 전 학기처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중간 기말고사 때는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시험 보기 전날 하루만 공부를 했어요.
빡시게 하지 않았어요. 만약 분량이 100페이지이다. 그러면 5-60페이지만 보고 말았어요. 근데 굉장히 이상한 것은 제가 본 딱 그 페이지에서만 시험문제가 출제가 되었어요.
굉장한 우연의 일치처럼 8과목 전부가 다 제가 본 그 페이지에서만 문제가 출제가 되었어요. 정말 찝찝했어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그런 과목이 많아질수록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대충 대충 공부하고 학기를 마무리하고 성적표를 받았어요. 4.5점 중에 몇 점 맞았을 것 같아요?
4.38이었어요. 이 충격적인 점수 앞에 저는 진짜 기가 막힌 우연으로 내가 본데서만 시험이 나와서 성적을 잘 맞았네. 라고 생각했어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자퇴를 하러 갔어요. 편입할 건데 성적이 뭐가 중요하며 학교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자퇴를 하겠다고 하는데, 학생처에서 안 된다는거에요.
“아니 내가 자퇴를 하겠다는데 왜 못하게 하세요!”라고 묻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서, 성적을 이렇게 받아놓고 자퇴하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본인이 여기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데 다 후회했다고.
어차피 전액 장학금 나오니까 받아서 등록하고 휴학을 하라고, 자퇴하고 하고 싶으면 그 때 자퇴를 하라고 하면서 제 자퇴서를 제 앞에서 찢더라구요.
굉장히 황당했지만, 그 분의 말대로 등록을 하고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필리핀에 갔어요.
필리핀에 가서 3-4개월 후 그렇게 좋지 않은 대학이지만 아무튼 대학교에 편입 성공을 했어요. 등록금도 한국에서의 1/3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다닐만하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그 때, 한국에서 한통의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높은 분들이 “나라 지원금을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다 적발이 되어 회사가 정부에게 넘어갔다.”라는 소식이었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직장을 잃으셨어요.
부모님께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고, 장남인 제가 옆에 있기를 원하셨어요.
전 가기 싫었어요. 어떻게 필리핀에 왔는데, 여기에서 이제 선교사의 삶을 배워가고 있는데, 그리고 편입도 했는데 내가 왜 돌아가야 해? 라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그런데 기도 할 수록 안되겠는거에요. 들어 가야겠는거에요.
그래서 결국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복학을 했어요.
만약 제가 그 때 자퇴를 했었다면?
그 분에게 끝까지 우겨서 자퇴를 하고 학교를 그만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 때 제가 아무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제가 공부했던 곳에서만 시험문제가 나오지 않았다면?
전액 장학금을 받지 않았다면?
그 때 깨달았어요.
8과목의 중간, 기말고사에서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로 내가 본 곳에서만 시험 문제가 나온 것이 아니었구나.
“우연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멀리 보심과 일하심을 제한하면서,
그 분께서 내 삶에 일하실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구나.
“우연이 아니라, 이 때를 위해 예비 해 두셨던 하나님의 큰 그림이었구나.”를 깨닫게 된거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자신의 뜻을 이렇게 이루어 가시는구나! 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날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한 길 만을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에요.
어떤 길이던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세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으세요.
내가 그 길을 선택 할 때도, 그 길을 걸어 갈 때도 그 분은 함께 하고 계셔요.
이게 중요해요.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그 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할 수 있도록, 목적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이끌고 계셔요.

어울리지 않는 여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이 곳에 있는 저와 여러분도 매일의 삶에서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있어요.
2절이에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이라 말해요. 그런데 이 말은 잘 못 된 말이에요.
이삭을 줍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특별한 복지 였어요. 누구에게 어떤 은혜를 입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룻은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마치 나에게 그런 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다면 이삭을 주워오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모압 출신이었기 때문이에요.
저주 받은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에 절대 섞일 수 없고 들어와서도 안 되는 완전한 저주를 받은 민족이 모압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갖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 땅에 왔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 것과 별개 였거든요.
그녀에게 지금 필요 한 것은, 출신과 모습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며 배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것과 상관없이 가난한 자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어요.
저에게 “자퇴하지 말라고 뜯어 말렸던 학생처 직원"처럼 “8과목 모두가 내가 공부한 곳에서만 나왔던 것처럼"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이미 준비해두셨어요.
그 사람은 바로 보아스였어요.
보아스는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어요.
정말 나이스하고 멋진 사람이었어요.
자신에게 속한 종들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그 당시에 종들을 함부로 대해도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보아스는 종들과 친구처럼 편안하게 지냈어요.
종들과 함께 반갑게 인사하면서 밭에 들어 온 보아스는 열심히 일하고 있던 낯선 여인 룻을 발견해요.
3절을 보면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 온 것을 “우연히"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우연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말 말도 안되는 확률로 잭팟이 터진 ‘우연'이 아니에요.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갔음"을 이야기 하는거에요.
그녀가 들어간 그 곳은 “긍휼의 마음을 갖고 출신과 모습 그리고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 사람. 보아스”의 밭이었어요.
그녀에게 필요했던 사람.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그 사람의 밭에, “우연을 가장 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들어간 것"이죠.
보아스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요.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여서, 예뻐서가 아니라 정말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내 딸아 들으라!”라고 말하면서,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에 머물라.고 말해요.
당시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기 대문에 이방 여인이 다른 밭에 가면 봉변을 당할 수 있었어요.
그 것을 잘았기 때문에 보아스는 그녀에게
“내가 너의 빽이 되어 줄게.”
“내 종들이 누리는 모든 것을 누려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긍휼의 마음을 베풀어요.
당시 유대 사회에는 신분제도가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먼 곳에서 와서 그 곳에서 머물며 우거하던 자들 게르 그리고 가장 천한 신분인 이방인 노크리 세 계급이 있었어요.
그 중 노크리이자를 받고 빚을 독촉해도 되는 그리고 빚을 갚으라고 부당한 것을 강요해도 괜찮은 모두가 무시하는 계급이었어요. 그리고 룻은 그 중에서도 더 천한 모압사람이었죠.
예상치 못 한 보아스의 관심을 받은 룻은 바짝 엎드려서 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물어봐요.
나이 많은 남자가 젊고 가난한 외국 여인에게 혹 못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어떤 목적을 갖고 선의를 베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다시 말해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거에요. 그녀는 자신은 이 밭의 주인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십니까?” 라는 질문에,
“너의 삶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뭐 작업 거는 것도 아니고, 진짜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해요.
보아스는 오늘 처음 룻을 봤어요.
그리고 또 알아 보지도 못해서, 종들에게 “저 여인이 누구냐"라고 묻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그녀를 향해 “내가 너의 삶을 잘 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작업을 거는 멘트"가 아니라,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 너의 긍휼한 마음을 내가 잘 안다.”
“너가 시어머니를 향해 베푼 사랑을 내가 들었다.” 라는 말인 것이에요.
룻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것이었어요.
아무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심지어 고향과 가족을 두고 떠나 시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온 룻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내가 너의 후견인이 되어줄게.”
“내가 너의 백이 되어줄게"
“내가 너에게 먹을 것을 줄게! 책임져 줄게!”가 아니였어요.
그녀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그리고 그녀를 위로 해 줄 수 있는 말
“잘했다. 얼마나 힘들었니”
“시어머니를 위해 창창한 너의 모든 인생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구나"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모든 수모를 겪을 각오까지 했구나"
“너의 삶을 내가 잘 안다.” 였어요.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룻에게, 그녀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하고 계신거에요.
그녀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올 때 어떤 마음이었겠어요.
어머니를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믿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겠다. 라고 고백하며 따라 올 때 어떤 마음이었겠어요.
“자신을 따라 올 경멸과 조롱의 눈초리들 앞에 맞서 서겠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나가 이삭을 줍더라도, 아니 더한 일을 하더라도 시어머니를 사랑으로 섬기겠다.
엄청난 각오와 결단을 하고 온거에요.
그녀의 모든 행동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을 그녀의 그 마음을 보셨고, 보아스도 알아차렸던 거에요.
그래서 그녀에게 “너의 삶을 내가 잘 안다.”라고 말한 것이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모든 말과 행동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져 있어요.
우리가 말씀을 들으며 하는 매주의 그 결단은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
그 결단을 통해
“삶에서 이루어 내기 위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에 부딪치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맞서겠다.”
“뒷걸음 치지 않고 맞서겠다.”
“내 모든 언어와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 해 내겠다.”
라는 복합적인 마음이 담겨 있는거에요.

회복의 시간

여러분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놓고 결단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세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기가 막힌 전인격적인 삶의 회복이 시작돼요.
1장 22절을 보면 룻과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도착한 시기가 “보리 추수 할 때"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흉년 때문에 모압으로 도망을 갔던 나오미가 모압에서 먹을 것과 가족들을 다 잃어 버렸죠.
그리고 다시 먹을 것을 찾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요. 그 때가 보리 추수 할 때 였어요.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왔어요.
일반적으로 보리 추수 하던 때를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추수한 이삭을 절기의 시간을 갖는데, 이 때가 바로,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절기 “유월절"이었어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오미의 치유와 회복은 유월절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에요.
유월절은 출애굽과 연관이 있죠.
출애굽 때 문지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아 남았어요.
그리고 이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해요.
피를 바르면 죽지 않았던 것처럼, 죽지 않고 살아있도록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던 유월절이 있는 그 때 나오미가 돌아 온 거에요.
부자였기에, 흉년일 때 사람들에게 베풀며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던 나오미의 가족은 그 일을 하기 싫어 도망을 갔었어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들의 도망으로 인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해 큰 어려움에 쳐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을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녀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시면서 그녀를 향한 관심과 마음을 거두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녀가 돌이켜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 먹었을 때 유월절 절기를 보여주시면서, “너는 반드시 회복한다. 나는 너를 기다렸다.”는 것을 보여주셨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돌이키라고 하실까요?”
“무슨 짓을 했던지 돌아오면 회복시켜 줄테니 돌아 오기만 하라고 하실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린 이미 돌이 킨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은 보아스가 룻에게 했던 말과 같아요.
“내가 너의 삶을 안다.”
“너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안다.”
“그 답답함과 참혹함 속에서도 나를 위해 살려 하는 그 마음을 내가 안다.”
“나로 인해 기쁘고 평안함을 누리고, 그 평안함을 나누기 위해 살아가는 너를 내가 안다.”
“나는 너를 잘 안다.”
그 분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놓고 준비해 두셨어요.
마치 우리에게 동화를 읽어주려는 선생님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요청하면 만드신 이야기들의 줄거리들을 알려주실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실거에요.
“나는 함께 살고 싶어.”
“그리고 너가 나와 함께 살아 갈 것을 믿어"

내 삶의 헤세드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가온누리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만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두시지 않으셨어요.
혼자만 그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좋아하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해주신 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기를 또 원하고 계셔요.
룻처럼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아까 우리의 결단
“내 모든 언어와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 해 내겠다.”
라는 복합적인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잖아요?
그 복합적인 마음을 담아 우리 이 시간 “이 사랑의 이야기를 꼭 한 사람 이상에게 전하는 한 주가 되겠다!” 이렇게 결단하기를 바래요.
긍휼과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절대 어렵지 않아요.
우리 이번 주 두가지만 결단하면 돼요.
첫째, 내 주위에 있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일상의 필요를 채워주세요.
일상의 한 부분을 같이 보내 주세요.
커피 한잔 같이 하세요.
시간이 안되면, 한 주 살아가다 생각나는 그 사람에게 4천원 커피 쿠폰 보내 주세요.
4천원이지만, 상대에게 “나를 기억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감동함께 일상의 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그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거에요.
둘째, 마음의 상처를 함께 해주세요.
자꾸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잘 지내는지"만 물어 봐 주세요.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상처를 보듬어주고 해결 해 주려 하지 말고, “힘내"라고 진심을 담아 따뜻한 한 마디를 전해주세요.
“너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내가 다 알진 못하지만"
“널 위해 내가 꼭 기도할게" 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말만하지 말고 “진짜 상대를 위해 기도하세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거창한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 “나는 너의 삶을 잘 안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받았던 그 은혜를 잘 흘려보내는 이번 한 주가 되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결단하고 꼭 그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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