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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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 2. 기괴한 막장 드라마 3. 감정을 조심하라

Notes
Transcript

성경

말씀을 나누기 전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요.
“여러분에게 성경은 무엇인가요?”
“성경. 이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쉬고)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라! 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아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말씀을 다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 속에 다 좋은 이야기들만 있던가요?
정말 우리가 본받을만한 그런 좋은 내용들만 그 안에 있던가요?
아닐거에요.
하나님을 배신한 이야기부터 사람을 죽인 이야기
나라가 망한 이야기 등 도대체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성경을 읽고 보고 묵상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죠.
다시 질문 할게요.
“여러분에게 성경은 무엇인가요?”
“이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쉬고)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 것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이 내 삶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저는 100% 문과생 체질이에요. 저는 수학과 과학을 정말 어려워해요. 모르고 알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재작년 쯔음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목사로 살아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과학 책들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어요.
과학책을 사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펴서 읽잖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세요?
누가 수면가루를 뿌린 것처럼 바로 졸리기 시작하다가 책을 덮고 자게 되더라구요. 어떻게든 버티면서 책을 읽어도,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았어요.
저는 과학에 관심이 없는데 억지로 관심을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그 어떤 사전 배경도 지식도 없는데 읽어만 보려고 하니까, 과학과 내 삶에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읽히지 않았던 것이죠.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성경이, 우리의 삶과 완전히 동 떨어져 있었다면 혹은 내 삶에 그 어떤 것도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면 우리는 읽지 않았을거에요.
갖고는 다니겠지만 굳이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들으려 하지 않을거에요.
성경은 실제 세상에 사는, 실제 사람들의, 실제 삶에 대한 기록이에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정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그들의 모습이 내 삶의 모습이기도 해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본문은 우리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요.
“술과 감정"에 관한 내용이거든요.

기괴한 막장 드라마

여러분 헤롯이라는 이름 들어봤죠? 성경에 나오는 헤롯이라는 인물은 한 명이 아니에요. 여러명의 헤롯이 나와요.
오늘 본문에도 헤롯이 나오는데 이 헤롯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그 헤롯이 아니에요.
그는 헤롯 대왕이라 불렸던, 우리가 아는 헤롯 대왕은 진짜 악한 인간의 끝판왕이었다고 봐도 무방할만큼 정말 타락한 사람이었어요.
일단 열번 결혼을 했어요. 대왕이니까 열번 결혼 가능하죠! 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 결혼들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아내와 친아들까지 죽이기도 했어요.
진짜 잔인하고 타락의 끝판 왕이었던 헤롯 대왕이 죽은 이후 세 명의 아들이, 아버지가 다스리던 땅을 세 등분으로 나눠서 통치를 시작했어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 혹은 헤롯 안티파스라 불리는 사람이에요.
헤롯 안디바는 아버지처럼 포악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도 해서는 안되는 잘못을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어요.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땅들에서 여러 보고가 올라오는데, 대부분의 보고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와 기적들에 대한 내용들이, 헤롯 안디바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던 세례요한과 너무 비슷했어요.
그 사람은 예수님이었어요.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던 헤롯 안디바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3절을 볼까요? 세례 요한은 이미 잡혀서 감옥에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를 선포할 수도 없었고 기적을 보일 수도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던 초기에 이미 헤롯 안디바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있었어요.
헤롯 안디바가 몰랐을까요? 아니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그에게 굉장한 죄책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그를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헤롯 안디바가 세례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둔 이유는, 그의 설교 때문이었어요.
헤롯 안디바가 헤로디아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그 결혼을 두고 세례요한은 4절의 말씀처럼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라고 말했어요.
왕이 결혼 할 수도 있는데, 왜 “옳지 않다"라고 말 했을까요?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의 조카이자 처제였어요.
안디바 왕의 아버지의 손녀이면서, 안디바의 형제 빌립의 아내였어요.
그러니까 내 친형제의 아내랑 결혼을 한 것이죠.
완전 막장 아닌가요?
본인도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세례 요한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집어내면서 “잘못했다"라고 하니까 일단 세례 요한을 잡아왔어요. 그리고 실제로 죽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그를 죽이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거센 저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죽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세례 요한을 죽이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버려요. 그래서 감옥에 그냥 두기로 했어요.
헤롯 안디바와 다르게,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했어요.
헤롯 안디바와 다르게,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했어요.
그녀는 헤롯 안디바보다 더 악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세례 요한을 죽이기 위해 복수할 기회를 계속해서 노려왔어요.
그리고 드디어 복수의 날이 찾아왔어요.
6절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로디아는 헤롯의 유별난 자존심과 주체하지 못하는 정욕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딸 살로메가 헤롯 앞에서 춤을 추도록 만들었어요.
6절을 보면 살로메의 춤이 헤롯을 기쁘게 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랑스러운 딸이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귀엽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에 춤을 연습해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살로메는 재롱을 떠는 것처럼 귀엽게 춤을 출 나이가 아니에요.
헤롯과 헤로디아 사이에서 낳은 딸 살로메는 지금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소녀에요.
살로메가 춘 춤으로 인해 헤롯은 기뻐했고, 그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욕정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딸 살로메에게 굉장히 끈적하고 음탕한 춤을 추도록 강요했기 때문이에요.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거의 스트립 댄스를 추는 공주.
헤롯이 기뻐했다는 표현자신의 딸을 보고 욕정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말해요. 거의 미친거죠. 아니 완전 미친 사람인거죠.
술과 정욕에 취해버린 헤롯이 살로메에게 “춤을 춘 대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라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선포했어요.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를 찾아가요. 그리고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명령해요.
8절.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잘라서 쟁반 위에 올려서 가져다 달라는 것이죠.
아무리 엄마가 시켰다고 해도 사춘기 소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일까요? 진짜 막장 집안인거에요.
이 이야기를 들은 헤롯의 반응이에요.
9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술을 미친 듯이 먹고 완전히 취해버린 그가 단번에 술이 깨버렸어요. 술이 깰 만큼 너무 놀랐다는 것이겠죠?
꽐라가 될만큼 술을 잔뜩 마셨는데, 한 방에 술이 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 티 내지 말고 저에게 눈으로 말해주세요.
마셔 본 적 없는 것 같은 연기를 하는 건지 혹은 진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이 한방에 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그만큼의 충격을 헤롯이 지금 받은거에요.
제정신으로 돌아왔어요. 큰 일 났어요.
아무리 취해서 한 말이라 해도, 왕이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야 했어요.
만약 그 것은 불가하다! 라고 말을 한다면 왕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을 무서워하는 왕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집에 가서 아내에게 바가지 긁힐 것이 분명했어요.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나라에서 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왕의 약한 모습 혹은 약점을 찾으면 언제든 그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헤롯은 물러날 구석이 없어요.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약속을 지켜요.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서 가져다 주라 명령해요.
세례 요한을 잡아올 때도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가졌던 그 였는데, 지금은 더 큰 죄책감을 갖게 된 것이죠.

감정을 조심하라

한순간의 감정에 휘둘렸던 헤롯 안디바는 엄청난 큰 실수들을 저질렀어요.
욕정에 사로잡혀 형제의 아내를 빼앗아와서 결혼을 했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춘 스트립 댄스를 보고 정욕에 빠졌고,
그 결과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되었어요.
헤롯 안디바만 감정에 휘둘렸을까요? 아니에요. 헤로디아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술과 감정"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을 했었어요.
꼭 술이 아니어도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서는 안돼요. 왜냐하면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에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2가지를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어요.
첫째, 감정은 나와 주위 사람들을 파괴시킨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복수심을 위해 사춘기 소녀 살로메를 이용했어요.
세례 요한이 틀린 말 한 것 아니잖아요. 그의 말대로 헤롯 안디바는 형제 빌립의 아내와 결혼을 했어요. 헤로디아도 헤롯 안디바가 좋았어요.
결혼도 했고 가정도 있었지만 지금 남편보다 헤롯 안디바가 더 좋았어요. 그래서 본인의 판단에 의해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이 결혼을 정말 잘 못 된 것이잖아요. 일반 백성이 이렇게 결혼을 해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 받았을거에요.
그런데 헤롯과 헤로디아는 왕족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공인이었잖아요.
공인으로 제대로 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해요. 공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해요.
차라리 세례 요한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괜찮았을거에요. 그런데 반응을 했고 감옥에 넣었어요.
이 것부터가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함을 인정한 것이에요.
분명히 잘못을 했어요.
간접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어요.
그런데 그 사실이 너무 분했던거에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여러분 그녀의 딸 살로메가 어떻게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옷을 거의 벗다시피 하면서 춤을 출 수 있었을까요?
세례 요한을 향한 엄마의 분노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기 때문일거에요.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복수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을거에요.
헤로디아의 악독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받아드렸을거에요.
그래서 어머니의 말대로 십대 였던 살로메는 스트립 댄서처럼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었던 거에요.
헤로디아는 자신의 딸 살로메를 사용해, 남편 헤롯 안디바의 허세를 이용했어요.
자기가 당한 공개적 망신을 복수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그 가정을 파괴시키고 있어요.
원한과 적개심을 너무 오래 품으면 품고 있는 사람의 영혼이 병들어요.
원한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집어 삼켜버려요.
그래서 우리는 감정이 나를 휘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제가 부산에 있었을 때 제 맥북 배경화면을 이런 문구로 설정해놨었어요.
“우리는 하나님께 제가 감정과 느낌에 좌우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정말 제 감정과 느낌을 악하고 독하게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코로나가 터진 이후 저는 빠르게 온라인 사역으로 모든 것들을 전환 시켰어요.
언제 다시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될지 모르지만, 교회에 아이들이 왔을 때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이해주고 싶어서 또 그 만나지 못한 기간동안 우리가 해왔던 일들을 나누며 이야기 하고 싶어서 정말 많은 사역을 했어요.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아이들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달렸어요.
담임목사님께서 어느 날 회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저를 몇번 칭찬하셨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저는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저를 향한 질투와 분노를 쏟아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포섭해서 저를 대놓고 따돌리기 시작했거든요. 분명 우린 같은 소명을 받고 온 사역자들인데, 질투 때문에 누군가를 따돌리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죠.
저는 그냥 제가 참고 지나가면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굳이 저 질투에 대해 언급하면서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또 교육부서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았어요.
하지만 참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면 부정적 피드백을 쏟아내고, 제가 한 사역을 따라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사역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점점 힘들어졌어요.
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제가 감정과 느낌에 좌우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라는 문구로 배경화면을 설정하고 매일 보면서 마음을 다독였어요.
하지만 질투와 시기 그리고 따돌림은 시간이 갈 수록 더 커져갔어요.
결국 저는 사역을 하고 싶은 모든 동력과 마음을 잃어버렸고, 사임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던 중 인천제2교회에서 청년부 사역자를 뽑는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다 묻고 떠나면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주동자 중 한 명이 이 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고, 그 분에게 전화를 해서 저에 대한 악의적인 이야기를 쏟아놨어요.
저는 절망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정말 사역을 그만두고 믿음만 갖고 있는 사람이 되어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야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말씀이 있었어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이런 비참한 심정이었겠구나.
동굴에서 똥을 싸는 사울을 뒤에서 찔러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복수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을 때 이런 감정이었겠구나를 깨닫게 하셨어요.
억울하고 분노했던 모든 감정을 다 내려놓기로 했어요.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저는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고, 여러분을 통해 회복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만약 그 때 감정에 휘둘렸다면, 저는 이 곳에 있지 못했을 것이고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겠죠.
감정은 나와 주위 사람들을 파괴시켜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과 느낌이 나의 삶을 이끌지 않도록 기도"해야 해요.
둘째, 자기 합리화 하지 말라
헤롯 안디바는 살로메에게 한 어리석은 맹세를 취소할 수 있었어요. 왕이었고 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죠.
그도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이 악한 일임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옳은 일보다 사람들의 평가가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취소하지 않았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그를 죽였어요.
자기 합리화를 한거에요.
“비록 말 실수는 했지만 어쩔 수 없어.”
“나는 왕이니까 내가 한 말은 무조건 지켜야 해"
왕도 실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오히려 더 큰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살로메는 어떨까요?
공주가 스트립 댄스를 추는 것이 말이 되나요? 공주가 품위를 지켜야죠.
품위를 지키지 않고 반쯤 벌거벗은 음란한 스트립쇼를 하면서 살로메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 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명령에 따를 뿐이야.”
“엄마가 갖고 있는 마음의 소원을 딸인 내가 들어줘야 해.”
살로메의 합리화는 공주로써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도록 했고,
모든 사람들과 자신의 아빠 헤롯이 자신을 향해 욕정을 품도록 했고
한 사람을 죽음까지 몰아 넣었어요.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사실 우리도 자기 합리화 하면서 매일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요?
“위클리 미션 해야 하는데 오늘은 좀 피곤해”
“말씀도 읽고 하면서 내 신앙을 다져야 하는데 할 일이 많다.”
“대중교통 타면 말씀도 좀 듣고 해야지. 아 그런데 유튜브 재미있다"
사실 우린 작은 것에도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고, 합리화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아요.
세상 앞에 서 있는 여러분. 그 믿음과 신념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내 믿음을 보이는 것이 두려워 감추고 있지는 않은가요?’
새내기들은 이제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될텐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면 내 행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처음부터 말 하지 않으려고 맘 먹지는 않았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위축되어서 내 믿음을 꽁꽁 숨기고 있지는 않았나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 두가지를 꼭 돌아 보아야 해요.
첫째, 감정은 나와 주위 사람들을 파괴시킨다.
둘째, 자기 합리화 하지 말자
주로 자기 합리화는 “내 주관적 감정에 의해” 생겨나요.
여러분의 감정을 건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평온한 내 감정을 흔들어대는 것이 분명히 있을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내 감정선을 건드는 그 것. 여러분을 알고 있잖아요. 그 감정선에 지지 마세요.
자기 합리화를 멈출 수 없어요. 하지만 빈도수는 줄일 수 있어요.
이번 한 주 살아가면서 우리 감정에 무너지지 않기를 함께 결단하면 좋겠어요.
이번 한 주 살아갈 때 자기 합리화를 10번에서 8번으로, 8번에서 6번으로 조금씩 줄여나가기를 선포하면 좋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할 때 찾아오는 첫번째 감정은 “두려움"이에요.
이 선택 때문에 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혹은 내가 쌓아왔던 것들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잘 못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먼저 찾아와요.
그 두려움 이겨 낼 수 있어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 이렇게 기도하는거에요.
SNS든 어디던 여러분이 의식할 수 있는 곳에 써놓고 볼 때마다 읽으면서 기도하세요.
“하나님 제가 감정과 느낌에 좌우되는 삶을 살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제가 감정과 느낌에 좌우되는 삶을 살지 않게 해주세요!”
이 고백을 통해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줄여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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