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예수님, 전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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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까?

미국의 예수 세미나의 영향을 받은 ‘한국 기독교 연구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예수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며, 그는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제시한 의로운 삶을 살다가 죽었다는 주장이 목소리를 키워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해야 할 전도 대상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세 가지 정도로 정의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미친 사람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엄청난 사기꾼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일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광화문 광장에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다”라고 외친다면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할까요? 분명히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2천 년 전
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완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미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훌륭한 존재가 지지해 주었던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였던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미친 사람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친히 증명하셨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예수님을 살리셔서 오백여 행제들에게 보이실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손에 새겨진 못 자국과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미친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런 근거 없이 종로 한 복판에 서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게리 콜린스 박사는 예수님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후, 그에게서 정신적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비기독교인 심리학자들조차 ‘예수님의 정신 상태는 매우 건강하며,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으로 볼 근거는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사기꾼일 가능성도 매우 희박합니다. 예수님은 세계 4대 성인 중 한분으로 불리고 있으며,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던 사람들조차 예수님의 인품은 휼륭했다고 평했습니다. 수많은 회의주의자들도 예수님의 도덕성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도 또한 예수님이 사기꾼일 수 없음을 증명해 줍니다. 마태복음 3:17
Matthew 3:17 NKRV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 중 자신이 영생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신도들을 미혹에 빠뜨렸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여 영생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이비 교주들은 ‘사기꾼’ 소리를 들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천하지의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겠습니까?
셋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일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예수님의 역사성을 공부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로마에 충성을 바쳐야 할 백부장이란 한 장교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마태복음 27:54
Matthew 27:54 NKRV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을 따랐던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12명 중 11명은 순교했습니다. 그 중 순교하지 않았던 사도 요한도 모진 핍박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자연사하게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순교자들의 피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가리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 했습니다. C.S.루이스는 “예수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주장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라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알고, 증명해 줄 사람들이 적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리와 요셉 마저도 예수님께서 특별한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살다보니 잊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쯤 유월절을 맞이하여 그의 부모인 마라아와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에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와 요셉은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예수살렘에서 나사렛으로 돌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예수의 부모는 3일동안 이 사실을 모르다 나중에 알고 뒤 늦게 예수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누가복음 이장에 기록돼 있습니다.
Luke 2:46–50 NKRV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표현하느데 마리아와 요셉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렇습니다.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마리아와 요셉도 12년 동안 자신들과 지냈던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아이처럼 예수님을 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 섭리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시게 하시어 그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인간과 동일한 환경에서 살게 하셨을까요? 그것은...인류의 범죄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범함으로 인류에 ‘죄’가 들어왔고 이로인해 인류가 타락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께서 아담과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시다가 순종의 열매인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하시어 저와 여러분들이 영생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신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인간의 아들로 이 땅에서 33년동안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신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분명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대표해서, 죄인과 연대해서 자신이 대신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이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14
Matthew 3:14 NKRV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받지 않아도 되는 ‘죄 용서’의 세례를 받으셨던 것도,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서 사셔야 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인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죄를 그 어깨에 짊어지시기 위한 순종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Matthew 3:15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침례)를 베푸시는 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서 ‘의’란 무엇일까요? ‘의’를 ‘정의’라는 의미로만 이해하면 이 구절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죄인이 의인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보다는 의인인 예수님이 죄인인 요한에게 베푸는 것이 더 정의롭게 느껴지니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정의’의 개념으로 생각하기보다 ‘섭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를 짊어 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회개할 것이 있기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을 대표하여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이해하셔야 합니다.(연대성, 대표성)
세례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구속적 행위와 연결시킴으로써 골고다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성도의 죽음이되며, 그리고 세례는 하나님가 멀리 떨어진 삶의 종말인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시작인 생명을 수반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대표성의 원리, 연대적 책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던 한 남자가 퇴근길 버스 정거장에서 체포가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남을 해치는 것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왜일까요?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버정에 선 50대 중반의 평범한 남자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대체 무엇을 인정하란 말입니까?” 잡혀 올 당시 그가 하던 일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를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몸에 지니고 있던 시분증에 적혀 있던 이름은 리카르도 클레멘트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원래 국적은 독일이었고, 원래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이고, 원래 직업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작한 ‘열차’ 덕분에 우리 조직은 시간 낭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죠.” 그가 고안해 낸 것은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였습니다. 수 많은 유태인이 열차에 설치된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살마도 제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자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수백명의 죽음을 방관하며 가스실이 달린 열차를 개발한 아돌프 아이히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없었나요?”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약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결코 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재판을 지켜본 6명의 정신과 의사들의 판정은 이러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며 준법 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 그러나 8개월간 지속된 지루한 재판....하나 둘 자리를 떠나는 방청객들 속에서 끝까지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나 아렌트는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악의 평범성)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여도 우리 안에 있는 이 악의 평범성인 자기중심성이라는 원죄는 아담으로 파생돼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담은 범죄한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고, 이 아담 안에서 이 아담을 대표로 삼고 그와 연대하고 있는 인류는 그래서 타락한 죄인이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이 악의 평범성(원죄) 때문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고 자신을 복종시켜 순종의 길에 서셔야 했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죄인이 받는 세례까지 받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주석 (상~하) (1.2. 예수의 세례(3:13~17))
첫째, 세례는 예수의 겸손한 순종을 상징하며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의를 성취한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심판하러 온 자가 심판받는 것이며, 더 큰 자가 세례 받아야 할 더 작은 자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다. 17절에서 들린 음성이 첫 번째 종의 노래인 이사야 42장의 암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예수는 주의 종으로서 낮아진 삶을 통해 의를 성취하신다.
둘째, 예수의 세례는 백성의 해방과 회복을 상징한다. 세례가 이스라엘의 해방, 새출애굽을 상징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예수는 백성의 세례에 동참함으로써 세례에 참여하는 자들이 회개와 믿음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경험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마지막으로, 첫째와 둘째와 연결해서 세례는 예수의 속죄 사역을 예고한다. 예수는 죄인이 아닌데도 죄인이 회개의 표로 받아야 하는 세례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신다.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1:21; 9:6; 26:28)이 요한에게 와서 죄를 자복한 백성처럼 세례를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세례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20:28; 26:28)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예수와 연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그의 대속적 희생을 통해 회복시키실 것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주어지는 혜택을 받으며 회개와 믿음을 통한 탄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온전한 순종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사역과 구속의 사역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의 성공한 대표가 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과 함께 생명을 연대하여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신 가장 큰 이유인 것입니다.
순종의 방문
세례(침례)를 받으시기 위해 예수님은 갈릴리로부터 요단강까지 걸어오셔야 했는데, 성경에는 간단하게 언급되지만 사실 24Km에 이른는 먼 거리입니다. 일반 성인의 발걸음으로 6시간 쉬지 않고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거리죠.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요한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이 순간은 메시아와 그의 전령이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그의 전령이라 말할 수 있는 요한을 만나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수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메시아에게도 순종의 모습이 보이고, 전령인 세례 요한에게도 순종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 즉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아담 되시는 예수님과 그의 전령은 하나님의 ‘의’에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 옵니다.
Matthew 3:17 NKRV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한 순간 주변은 고요해졌을 것입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난생 처음 보았던 사람들은 어안이벙벙해졌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나사렛 청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예수님 머리 위를 멤돌고 있는 비둘기 모양을 하고 있는 성령님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비둘기 모양의 성령님께서 예수님에게로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다.
이 장면을 가만히 그려보면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순간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모습(목소리, 비둘기, 인간)으로 한자리에 모이셨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받은 분이라는 것이 지켜보는 모든 이들 앞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하늘이 열렸고, 그 곳에서 음성이 들려 왔고, 비둘기 모양의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세례요한과 같은 예수님의 전령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성도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에 ‘순종’을 통해 예수님의 오심을 예비 하였다면 저와 여러분들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저와 여러분들의 ‘순종’을 통해 예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구체적인 순종이 무엇입니까?
1. 사명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주된 순종의 사역은 회개가 필요한 자들에게 메시아에 대하 말하고 회개의 세례를 요단강에서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측면에서 현장에서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람,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고 독려해야 할 사람, 전문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기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사람...이 모두가 다시 오실 예수님 앞에서 그 분의 길을 예비하는 전령들인 것입니다.
Matthew 3:2 NKRV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2. 겸손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 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겸손은 자신이 죽고 우리 안에 예수가 살아날 때만 가능한 성품인 것입니다. 자기 중심성이 란 죄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게 만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겸손의 훈련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권위에 파묻혀 타인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았던 사람입니다. 당대의 권력층들 안에 부패함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도 자기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타인을 간파할 수 있는 시선의 훈련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3:7
Matthew 3:7 NKRV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예수님은 볼품 없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9
John 1:29 NKRV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표적과 그의 성품을 보았을 때 그는 분명 미친 사람도, 사기꾼도 아닌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은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훈련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일 중심이 아닌 관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고, 역지사지의 사고방식을 통해 그 살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훈련을 할 때 어느덧 저와 여러분들 안에서 예수님의 겸손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닌 죄인의 입장에서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그것이 지나쳐 죄인이 받아야 할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 죽으신 것입니다.
3.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도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들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다는 뜻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반듯이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임하십니다. 세상이 혼돈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처럼 이 혼돈한 세상을 운행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로 세상이 물로써 심판을 받았을 때 비둘기는 쉴 곳을 찾아 헤매이며 갈 곳 모르는 방주의 방향키 역할을 하였습니다. 비둘기는 온유하신 성령의 모습을 나타내며 신약 시대에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 안에서 갈바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방향을 제하도록 우리를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선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니니라”라고 인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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