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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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노라의 빛 2. 예배의 결론은 기쁨 3. 기쁨은 은혜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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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저녁 예배 2번 성막에 대해 나누면서 우리 삶의 성막을 세우고 또 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을 모시자 이야기했어요.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죄와 영원한 심판 그리고 정죄함 등이 우리의 내면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막고 계셔요.
이 사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어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축복해요.

메노라 - 심령 속에 변화를 불러오는 빛

성막에는 수많은 기구들이 있어는데,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려 해요. 오늘은 등잔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
등잔대는 순금으로 만들어졌고 특별한 꽃 형상이 새겨져 있어요. 등잔대에는 7개의 불을 올릴 수 있는 7개의 나무가지가 조각되어 있었어요.
성막은 여러 가죽들로 위를 덮어놔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요. 창문도 없는 곳이라 어두컴컴해요. 빛이 필요해요.
등잔대는 어두운 성막에 빛을 비추어주는 역할을 해요.
등잔대는 다른 말로 메노라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메노라의 뜻은 빛이에요. 그러니까 등잔대는 오직 빛을 내는 도구. 어두운 성막의 모든 부분을 다 몰아내는 빛의 역할을 의미하죠.
오늘 나눌 말씀의 주제는 ‘빛'이에요.
메노라는 단순히 빛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에요. 하늘에서 내리는 빛. 어두움을 물러나게 해주는 그러한 빛이 아닌, 죄와 각종 어두움 속에 있는 우리의 심령 속에 변화를 불러오는 빛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물들여진 저와 여러분의 마음.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묻어버린 죄의 흔적들과 그 흔적들로 인해 오염되어진 삶의 영역들이.
메노라를 통해 드러나고 다 타서 사라지게 되는거에요.
나를 힘들게 하고 짓누르는 그리고 갈등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메노라 앞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모습을 고백함으로 오염되고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것.
그것이 예배이고 메노라. 빛을 받아드리는 시간인 것이에요.
예배는 어둠이 아니라 밝음이에요.
예배를 통해 하나님만 드러나고 하나님만 남기에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예배는 밝음이에요.
예배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증거하는 시간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시간이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예배의 이야기에 반드시 이 내용이 들어가야 해요.
“메노라. 빛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어두운 모든 부분이 이 빛을 통해 소멸되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내용이 반드시 지금 이 시간에 쓰여져야 해요.
제가 다녔던 인도 학교는 기숙사는 2인 1실이었어요.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참 젠틀하고 좋은 의대생 친구였는데, 정말 성격도 좋고 배려심이 많은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런 친구가 굉장히 예민해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인도는 학기 중에 4번의 시험을 보는데 마지막 시험이 정말 중요해요.
학교 시험인데도 불구하고 4번째 시험은 교육청에서 문제를 내서 보내더라구요. 그리고 수능처럼 보안이 철저하고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봉인된 시험봉투를 열고 나누어주어요.
컨닝을 하면 끝.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바로 쫓겨나서 시험을 보지 못해요. 1-3차를 아무리 잘봐도 4차를 못보면 끝이에요.
이 친구가 예민해지는 시기가 4차 시험때였어요.
세 얼간이라는 유명한 인도 영화가 있는데, 세 얼간이는 주인공 세명을 부르는 명칭이에요.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 중 하나가 기숙사 방에서 자신이 믿는 신들 앞에 서서 향을 피우고 돌려가면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것처럼 제 룸메가 4차 시험을 앞두고 방에서 그렇게 하고 있더라구요. 자신이 믿는 신들 앞에 서서 계속해서 기도하더라구요. 2-3시간? 그 시간을 신상 앞에서 기도하더라구요.
저는 신기해서 옆에 앉아서 큐티를 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어요.
그리고 이제 그 기도가 끝이 났는지 샤워를 하러 들어갔어요. 아니 근데 안나오는거에요. 나도 학교를 가야니까 씻어야 하는데 거의 한시간동안 안나오길래 참다 참다 언제 나오냐 물어봤어요.
한참 대답이 없던 친구가 나왔는데, 그 때 저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 친구가 샤워를 한 것은 분명한데 머리를 감지 않은거에요.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믿고 그 분께 기도하는 것처럼, 너도 너가 믿는 신에게 기도한 것은 알겠어. 또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예배를 드렸는지 알겠어. 근데 왜 머리는 안 감았어? 하고 물어봤어요.
그 친구가 의식을 하는 동안 머리에 뭔가를 뿌리는 것도 봤거든요.
최소한 제 생각으로는 머리에 그 기름? 흘러내리는 무언가를 닦아야 하는데 하지 않은거죠.
자신이 오랜 시간을 드려 신에게 기도하고 예배하며 받은 축복이 머리에 있데요. 머리를 감으면 축복도 날라가고 시험도 잘 볼 수 없데요. 3-4시간의 예배를 마친 그 친구는 자신은 축복을 받았다며, 저보고 시험 잘보라고 하면서 사라졌어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신에게 열심을 다해 기도하고 예배하고 축복을 받으며 나갔어요.
그런데 저녁에 보니까 애가 술을 마시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잘봤으니 기쁨의 술인가 봤더니 우는거에요.
시험을 폭망했데요. 그 이유가 자신이 예배를 통해 신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지 못했던 탓이래요. 자책하고 있더라구요.
이 사건이 있고 몇달 뒤 저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처음 인도를 갈 때 학교 측의 실수로 6개월 비자를 받았어요. 남은 시간을 더 있으려면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유학생 비자 담당하는 사람을 찾아갔고 돈을 주고 비자 연장을 신청했어요.
제가 가서 해도 되긴 하는데, 학교에서 많은 유학생들의 비자를 담당해주고 있으니 훨씬 더 빠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분에게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저를 불러서 여권을 주면서 비자 연장 신청이 완료되었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고맙다. 하고 나왔어요.
근데 진짜 비자 연장 신청이 완료된 것이 아니었어요. 비자 연장 확정이 아니라, 임시 비자를 받아온 것이었죠.
비자가 나오기는 한데요. 근데 언제 나올지 모른데요. 그때부터 이리뛰고 저리 뛰면서 해결하려고 했어요.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했는데 진행되는 것이 없었어요.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던지 혹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비자 만료 두달 전부터 연장을 준비했는데 안됐어요.
너무 속상했어요.
인도에 또 뒤통수 맞았다. 라는 생각을 하며 지난 번에 말했던 학교 안 기도 모임에 갔어요.
이런 상한 마음을 갖고 예배의 자리에 갔는데, 예배가 집중이 될까요? 기도가 나올까요.
상실감, 하나님에 대한 원망, 화남, 자포자기 등 여러 감정으로 인해 집중이 1도 안되는거에요. 그런데 또 그 날 따라 일어나서 찬양을 하자는거에요. 일어나기 싫었지만 일어났어요.
찬양을 부르는 둥 마는 둥 하다 스크린을 봤는데 거기에 이런 가사가 적혀 있었어요.
의역하면 “나는 폭풍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 가사가 이해가 안되는거에요.
폭풍이 오면 정말 엄청난 바람과 비가 쏟아져 내릴텐데, 눈을 뜨기도 바로 서있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어떻게 웃는다는 거지?
저 가사를 쓴 사람은 미친건가? 폭풍 속에서 어떻게 웃어? 내가 지금 그런 폭풍 속에서 얻어맞고 있는데 웃음이 나올리가 없는데 왜 저사람은 웃지?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생각이 이어지다 저도 모르게 기도하게 되었어요. 기도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어두움 속에 숨이 탁 막힌 채로 갔던 곳.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어떻게든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가려는 사람들에게 너무 지쳐서 갔던 자리였어요.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이 그냥 이제 인도에서의 마지막 기도회다 생각하고 갔던 곳이었어요.
저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났어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며 어두움 속에 갇혀 있던, 어두움을 잔뜩 들고 갔던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하나님의 빛 앞에 저의 모든 어두움은 다 사라졌어요. 기도실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어요.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어요.
내 방법 생각 돈 이런 것들 믿지 말자.
하나님이 있게 하실거면 뭐 있겠지라는 마음이었어요.
여전히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그대로였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태도가 바뀐거죠.
저와 제 룸메는 각자가 믿는 신 앞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 친구는 자신의 정성에 만족해야하며 기쁜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갔어요.
저는 폭풍과도 같은 어려운 마음을 갖고 예배의 자리에 갔어요. 나는 어떤 정성도 드리지 않았어요.
자신의 정성과 힘으로 신을 찾았던 그 친구는 실패를 어두움을 얻었어요.
저도 예배의 자리에 나아갔어요?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빛을 주셨고 결과 제 마음에는 기쁨과 소망이 생겼어요.
지금 우리의 예배의 자리가 이래야 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두려움과 어두움들을 여기에서 다 털어내야 해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이 나를 누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야 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결국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 “하나님이 빛이라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드려야 해요.

메노라 - 등잔대의 특별한 꽃

메노라. 등잔대를 보면 특별한 꽃 모양이 새겨져 있어요.
19절에 보면 살구꽃 형상이라 번역이 되어 있는데요. 사실 제대로 된 번역은 아니에요. 이 것을 번역할 때 우리나라에 비슷한 것이 없어서 살구꽃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아몬드 꽃이에요.
아몬드 꽃이라 해야 등잔대의 의미가 더 선명해져요. 등잔대의 역할이 분명해져요.
우리는 아몬드! 하면 초코볼 속에 쌓여 있는 아몬드 혹은 견과류가 생각이 날거에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아몬드 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먹을 것이 아니에요.
아몬드는 “경계하다.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본다. 방심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와 발음이 같거든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몬드 꽃을 보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죠.
그들에게 있어 등잔대는 단순히 성막 안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도구가 아니에요.
광야에 사는 그들을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로 철통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 절대 방심하지 않고 눈을 나에게 고정하시는 하나님. 모든 순간 빛이 되어주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등잔대에 불이 올라가면 그들은 모든 두려움과 고민 그리고 고통들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빛. 하나님 그 자체였던 것이죠.
인도에 겐지스 강이 있어요.
겐지스 강을 가고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그 곳에 가면 5천년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알려진 장소가 하나 있어요.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지키는 가문이 있을 정도로 이들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불이에요.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어떤 천재지변이 있어도 이 불은 절대 꺼지면 안돼요. 왜냐하면 이 불은, 인도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이 불은 화장터의 불이에요. 죽은 시신을 태우는 불이에요.
그런데 빛의 역할을 하는 불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어요. 이 화장터 옆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죽어서 여기에서 태워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죠.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면 화장에 쓸 돈을 모아 찾아와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 날을 기다려요.
돈이 있으면 저렴한 숙소라도 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그 화장터 앞에 앉아 있어요.
왜 사람들이 여기에서 태워지기를 바라는 줄 혹시 알세요?
화장터의 불이 그들에게 유일한 ‘빛'이기 때문이에요.
대부분 힌두교인인데, 힌두교의 중요 교리 중 하나가 ‘윤회 사상' 즉 환생이에요. 죽으면 다른 무엇인가로 태어난다고 믿는데, 사람으로 환생하면 다행이지만 그들의 카르마 업보로 인해 동물 혹은 곤충으로 환생할 수 있다 믿어서 두려워해요.
윤회의 삶을 끊고 싶어해요. 윤회를 넘어 자신들이 그리는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해요.
이 화장터가 그들에게 있어 열반의 경지에 단번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에요.
쳇바퀴 같은 이 생의 삶. 환생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빛'이에요. 그래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거에요.
죽어서 이 화장터에 화장만 되면 윤회가 끝이나고 단번의 우주의 진리 열반에 직행 할 수 있게 된다 믿거든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죽고 난 후 24시간 안에 화장 되어야 해요.
24시간이 지나면 시체에서 냄새가 나는데, 냄새가 나면 영혼이 인간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믿거든요.
그래서 화장터 옆에서 죽어야 해요.
죽고 여기에서 태워져야 끝이 나요. 그들의 유일한 빛은 ‘죽음'으로 끝 맺어져요.
하나님 외의 모든 가짜 빛들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해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아요.
그들이 의지하는 빛은 그들을 인도해줄 수 없어요.
죽은 이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겠어요.
죽어서 이 불에 태워져야만 열반의 경지. 구원에 이를 수 있데요.
하지만 하나님은 달라요.
우리의 삶과 죽음 이후에 모든 상황에 유일하게 영항을 줄 수 있어요.
그저 그분을 믿기만 하면, 고백하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게 되어요.
저와 여러분은 이 예배를 통해 그리고 매일의 삶을 통해 이 빛을 누려야 해요. 받아드려야 해요. 빛을 나의 것으로 소화시켜야 해요.
그런데 이게 또 말은 쉬운데 진짜 빛을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요.
빛이 있으면 어두움도 존재하잖아요.
빛이 비추지 않는 부분, 내가 애써 감추는 그 부분은 여전히 어두워요.
하나님이라는 빛을 내가 막고 있는 것이죠.

메노라 - 하나님의 빛의 역사

지금 성막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세는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기 전까지 그는 정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었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고통 속에 있었어요.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가 광야로 도망갔잖아요?
그는 살아갈 목표와 희망을 잃었어요.
왕자로 살며 많은 꿈을 꾸던 그가 이제는 아무런 삶의 목적과 의미도 없이 그냥 장인의 양을 치며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그가 광야 서쪽으로 양들을 데리고 갔어요.
성경에서 방향을 가르치는 단어가 등장하면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요. 동쪽과 서쪽의 개념이 완전 달라요.
에덴 동산과 바벨탑 등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을 보면요. 다 동쪽으로 갔어요. 죄를 지으러 달려가는 장소 그리고 죄를 지어서 쫓겨나는 장소가 다 동쪽이었어요.
지금 모세는 서쪽으로 가고 있어요. 죄를 지은 사람들이이모여 사는 곳 그 서쪽으로 거슬러 가고 있는거에요.
언약궤의 뚜껑. 자비의 자리처럼 모세는 지금 길을 거슬러 죄인들이 사는 곳. 죄의 흔적이 진하게 새겨지고 있는 서쪽으로 이동했어요.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불 타오르는 떨기나무를 보며 하나님의 빛을 발견했어요.
감히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죄의 자리로 모세가 간 것이죠.
불타는 떨기나무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모세는 꿈이 생겼어요.
아무런 목적 없이 장인의 양을 치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분명한 목표가 생겼어요.
모세는 먼저 그 자비의 자리를 경험했어요.
이게 바로 메노라. 하나님의 빛의 역사에요.
광야에 사는 그들을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로 철통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
절대 방심하지 않고 눈을 나에게 고정하시는 하나님.
모든 순간 빛이 되어주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메노라. 하나님의 빛의 역사에요.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으로 인해 삶의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러한 메노라! 하나님의 빛의 역사는 특정한 누군가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누릴 수 있어요.
하나님의 빛. 메노라의 역사를 누리고 싶다면, 이 시간 하나님이 빛이라는 사실에 동의해야 해요.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을 믿어야 우리의 어둡고 얼룩진 모든 부분들이 다 사라져요.
그냥 빛이 오니까 어둠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 타서 사라져 버려요.
하나님께서 죄가 들어올 틈도 없이 언약궤의 뚜껑처럼 우리를 밀착방어 하고 계시잖아요?
거기에 하나님의 빛! 메노라의 역사까지 일어난다면요.
우리를 어두움으로 끌고 가는 모든 것들이 다 타서 사라져 버릴거에요.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 빛. 메노라의 역사가 필요해요.
기도하기 힘들면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찬양하기 어려운 마음이면 애써 찬양하지 마세요. 그냥 하나님 앞에 있으세요.
하나님만 부르세요. 빛을 기대하세요.
모세와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게 펼쳐졌던 하나님의 그 은혜가
시간과 공간을 건너 지금 이 자리에도 동일하게 여러분에게 일어날거에요.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다 타버리는 이 시간.
변한 것 없어도 빛되신 하나님과 함께 또 한 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의 한 주의 삶이 되기를 축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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