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유익한 자

빌레몬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1. 개인적 부탁 2. 자발적인 헌신 3. 바울의 표현

Notes
Transcript

개인적 부탁

지난 한 주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했기를 바래요.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 여러분의 정체성이 날마다 더 선명해졌기를 또한 소망해요.
오늘은 본격적으로 오네시모라는 사람에 대해 나누려고 하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삶의 자리와 공동체에 서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 되기를 원해요.
(쉬고)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난 곳은 감옥이었어요. 사실 오네시모는 로마 감옥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지금 로마 감옥에 잡혀 들어온 것이죠.
그는 사실 추노에요.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종. 노예였어요.
당시에 주인으로 부터 종이 도망을 치면 일단 수배자 명단에 올라서 전국에 얼굴과 현상금이 붙었어요.
잡히게 되면 쇠 목줄을 채우거나 도망갔던 노예라는 의미의 문신을 새기기도 했고 심한 경우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었어요.
그리고 정말 큰 일이 아니고선 종들이 주인에게서 도망을 치진 않았어요.
주인은 노예들의 생사여탈권을 갖고는 있었지만, 함부로 대하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물론 개중에 노예들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체적으론 잘 해주었어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보다 노예들이 훨씬 더 잘 살았어요.
노예를 부린다는 것의 의미는 주인이 부자라는 것을 말하는데, 노예들은 부자 주인의 집에서 나오는 음식도 풍족하게 먹었고, 옷도 잘 입었어요. 심지어 가끔 주인에게서 고생한다고 용돈도 받았어요.
노예는 아니지만 자유를 갖고 있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한달간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보다 더 풍족하게 노예들이 살아가고 있었다는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잘 도망가지 않았어요.
도망가는 순간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더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쉬고) 이런 상황에 오네시모가 도망을 친거에요.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그렇게 좋은 성품을 가진 종이 아니었을 것이라 전통적으로 추측을 해요. 그는 종으로써도 대충 대충 일하며 살았는데, 그러던 중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서 도망을 친거에요.
살던 골로새 지방을 떠나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로마로 왔어요.
대도시였기 때문에 로마에 숨으면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훔친 돈의 액수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친 오네시모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울을 만나게 되었어요.
무엇이 되었던 감옥에 들어올만큼 문제가 있었던 그가 바울을 만났고 복음을 듣고 회심해서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어요.
사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잖아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백종원이 소리도 지르고 혼도 내보고 타일러도 보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이 등장하더라구요.
내 몸에 익어버린 습관이 변화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겠죠.
오네시모는 그 사람들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거에요.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난 것만 보아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가잖아요.
그랬던 그가 순식간에 바뀔만큼, 이전의 모습들이 전혀 보이지 않을만큼 사람의 인상과 기운과 행동 등 모든 부분에 변화가 나타난거에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이것은 어떤 감정적인 요소로 인한 순간적인 변화가 아니에요.
바울이 다메섹으로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 가다 예수님을 만나 삶이 완전히 바뀌었던 것처럼 오네시모도 인격과 삶의 변화가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쉬고) 10절을 보면 바울이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테크논'인데, 이 것은 애정으로 가득 찬 용어에요.
바울은 감옥에서 만난 오네시모를 ‘빌레몬과 같이 사랑하는 아들’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죠.
당시 도망치다 잡힌 노예들은 반드시 옛 주인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법이 있었어요. 도망친 노예를 숨겨주면 중죄로 인정이 되어서 숨겨준 사람도 심한 처벌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옛 주인에게 돌아오게 되면 두 가지 중 하나 였어요.
노예 취급도 받지 못하고 완전 투명인간처럼 대우를 받는다거나, 사형을 다해 죽거나.
더 이상 사람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보내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쉬고) 그 문제는 바로 지난 주에 나눴던 것처럼, 오네시모와 빌레몬 그리고 교회 교회 공동체의 용서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런 내용을 몰랐던 빌레몬과 교인들은 이 편지를 받아들고 굉장히 기뻐했어요. 10절 전에 오네시모에 대한 언급이 없거든요. 빌레몬과 교인들을 칭찬하는 말들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기뻐했을텐데, 갑자기 10절에 오네시모가 등장을 해요.
어떤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명존쎄 아니었을까요? 진짜 뼈를 제대로 얻어 맞은 것과 다름이 없었을거에요.
(쉬고) 10절을 헬라어 순으로 다시 해석해보면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얻은 자녀가 있습니다.”
“내 자녀를 위해 당신에게 호소합니다.”
“그를 용서해주세요”
“그는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쉬고) 소름 쫙 돋지 않았을까요?
집에서 일하는 도중에도 태업을 일쌈고 분위기를 흐리던 그리고 결국에 돈을 들고 도망갔던 무익하고 쓸모 없는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바울이 감옥에서 낳은 아들이라니?
바울이 지금 무엇인가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바울이 지금 오네시모에게 뭔가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닐까?
등등의 생각들이 들지 않았을까요?
(쉬고) 8절을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말을 하죠.
사도의 권위를 갖고 빌레몬에게 “오네시모 용서해"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려면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데로 받아주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여기에서 말하는 ‘담대함'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음. 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바울은 그 자유를 사용하지 않기로 해요. 대신 빌레몬에게 사랑으로 받아주기를 요청해요.
“빌레몬아 니가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화 되었을 때를 기억하길 요청한다"
“오네시모를 만나주길 바란다.”
“그가 너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새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그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쉬고) 바울은 빌레몬이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빌레몬 스스로가 기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바울은 기다리고 있는 것이죠.
제가 목사로써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줄 아세요?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라고 찾아 올 때에요.
여러분들이 뭔가 하려고 의욕을 보이면서 하려고 할 때 가장 행복해요.
교육부서처럼 제가 프로그램을 짜서 줄 수도 있지만 그 것보다 자발적인 마음과 섬김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버딧리스트 여러분들이 하는 것 보면서 진짜 너무너무 기뻤어요.
버디들만의 즐거움과 유익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섬기고자 하는 마음으자발적인 선택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내 할 일은 이제 끝났다.”
“공동체가 이렇게 회복되고 활기차 진 것 참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수련회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돌려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여러분 작년 3월에 봄말씀 축제를 하던 토요일 밤에 몇명이 왔었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29명 왔었어요.
에이~ 토요일이니까 없었겠죠. 코로나니까 안온거에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에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마음이 있었다면 토요일 밤이라도 나왔을 것이고, 코로나였어도 와서 거리두기 하고 앉아서 찬양하고 말씀을 들었을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그 다음 날 주일 3배가 넘는 사람들이 와서 예배를 드렸어요.
우리의 마음이 자발적이지 않았고, 모이지 않았고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수련회 때 텐션도 미쳤었고 지금도 여전히 여러분 마음 속에 그 은혜들이 남아 계속 움직이고 있잖아요.
공동체가 이렇게 빨리 회복되고 활기차진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 할 수 없어요.
저는 제 자신을 늘 무익한 존재다 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무익한 저와 같은 사람에게 참 많은 복을 주셨어요.
이렇게 공동체가 회복되는 과정들을 곁에서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복의 자리에 꼽사리 껴주셨거든요. 그래서 전 참 복이 많은 사람이고, 그 회복되는 공동체의 주인공인 여러분들은 더 큰 복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쉬고)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았어요.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갇혀 있다 생각했고, 그 안에서도 충분히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정말 그 곳에서 오네시모에게 말씀을 전했죠.
바울은 빌레몬에게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나처럼 너도 예수를 믿는 사람답게 복음을 위한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라며 사랑으로 간구하고 있어요.
이것은 사랑을 가장한 협박이 아니에요. 바울은 빌레몬이 듣지 않고 원칙을 고수한다해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다만 빌레몬이 한번만 더 생각해주기를 요청하고 있을 뿐이죠.
자발적인 헌신을 기다림
사실 오네시모는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돈을 훔쳤고 감옥까지 왔잖아요. 그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유추 할 수 있죠.
하지만 바울에게 그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 사람이 예수를 아는가 모르는가"에만 있었어요.
바울은 복음의 위대함을 믿고 있었어요.
“죄인도 변화될 수 있다. 이 사람도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네시모는 복음을 받아드렸고 실재로 변화가 일어났어요.
(쉬고) 여러분 혹시 오네시모의 이름의 뜻을 알고 있나요?
1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여기에 그의 이름의 뜻이 숨겨져 있어요.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활용해 바울이 지금 언어유희를 펼치고 있는데,
무익한 자아크레스톤 이고 유익한 자유크레스톤이에요.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자 라는 유크레스톤에서 나왔어요.
유익한. 유용한 자라는 이름을 가진 오네시모인데, 빌레몬의 집에 있을 때 자기 이름 값도 못하는 아주 무익한 사람이었죠.
이름 뜻대로 살면서 주인에게 유익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결국 돈들고 ㅌㅌ한 사람 진짜 무익하고 쓸모 없는 도둑과도 같은 사람이 어요.
오네시모가 살았던 곳은 브루기아 라는 곳인데, 브루기아 노예들! 하면 모두가 떠올리던 표현이 있었어요.
“믿을 수 없고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의 대명사"
이 표현처럼 오네시모믿을 수 없고 충성스럽지 못한 이름만 유익한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바울이 “이전에는 무익"했으나 “이제는 너와 내게 유익"하다. 라고 말을 하고 있죠.
거듭난 이후 이름 값을 하게 되었다! 라고 언어유희를 통해 말하고 있는거에요.
(쉬고) 그가 어떻게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린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거든요.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려는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서 그의 인격이 완전히 변하게 된거에요.
이제부터 오네시모는 빌레몬과 바울의 곁을 지키고 도와주는 복음의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쉬고) 12절. “그는 내 심복이라"
심복이라는 표현은 내 심장이라는거에요. 내 심장은 바로 나 자신을 말하는거죠.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는 내 심장. 내 분신과도 같다"라고 말하며 변화된 오네시모를 보증해주고 있어요.
바울은 편지만 보내고 오네시모를 내 곁에 둘게! 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오네시모를 돌려 보냈어요.
주인에게 가서 자신의 지난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오네시모에게 준 것이죠.
아무리 오네시모가 변화되고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해도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했던 거에요.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관계 회복을 위해 그를 보내고 있는 것이죠.
(쉬고) 이 모습은 우리에게도 필요해요.
오네시모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두렵고 떨리지만 주인의 집으로 돌아왔고, 빌레몬그 잘못을 용서하며 사랑을 품어주어야 하죠.
두 사람 다 바울이 시켜서 만나고 용서를 하고 하는 상황이 아니라,
오네시모는 정말 진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왔고, 빌레몬은 복음을 붙들고 그를 용서하고자 하는 선택을 스스로 하고 있는거에요.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이와 같아요.
스스로 자발적인 헌신을 하는 공동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작년 말 여러 팀들을 모집했고, 데코팀이 만들어졌어요.
우리 예배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계속해서 여러분을 위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죠.
이번 수련회 TFT팀도 마찬가지에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갈아내면서까지 할줄 몰랐는데 지원했고 열심을 냈고 수련회 기간동안 열심히 다른 청년들을 섬겼죠.
혹 다음에 또 TFT가 만들어진다면 이번처럼 뼈를 갈아내진 말고, 체력관리들을 잘 하면 좋겠어요.
임원들, 제이원, 순장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가 다 스스로 공동체를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고 회의하고 연습하고 기도하고 있죠.
여러분이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교회. 가온누리 공동체자발적인 헌신과 섬김 그리고 사랑으로 나도 너도 서로가 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되어야 해요.
누군가 강요해서, 권해서가 아니라 주시는 감동에 따라 스스로 순종하는 그 모습이 빌레몬과 오네시모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있어야 해요.

바울의 표현

15절.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오네시모는 용서 받을 자격이 없는 못된 사람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어요.
바울을 만나 예수님에 대해 듣도록 하셨고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아마 그가 계속해서 빌레몬의 집에 있었다면, 먹튀를 하지 않았다면 집 안에서 끊임없은 불화를 일으켰을거에요.
하나님은 그가 악한 행동을 했지만, 빌레몬 곁을 떠나도록 하셨고 예수님을 만나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가 되도록 하셨어요.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유익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공동체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죠.
바울은
“그는 용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이제 너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으로 세워주셨다.”
악을 선으로 바꾼 하나님의 은혜빌레몬 너도 보고 누리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쉬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정말 미안하지만 사실 우리는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들이에요.
모든 자유를 허락하시고 많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자꾸 나아가려고 할 때도 있고 때론 그 것들을 악용해서 나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죠.
그래도 나는 오네시모랑 다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쉬고) 여러분은 어떤 신앙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가요?
무익한 자. 유익한 자.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아니면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쉬고) 우리는 죄와 허물로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요.
복음으로 인해 자유를 얻었으나, 내 자유를 자꾸 빼앗아 가려는 세상 속에서 매여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익한 자로 만들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해 무익한 사람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쉬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유익한 사람이에요.
세상이 아무리 여러분을 무익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여러분의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과 불편한 감정들을 집어 넣고 뒤흔든다 해도,
여러분이 유익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쉬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고 목숨을 걸고 살려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유익한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이번 한 주 살아가면서 여러분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쳐보세요.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유익한 자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짧지만 이 두 외침이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을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해줄거에요.
“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유익한 자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스스로에게 선포하고, 하나님에게 고백하는 이번 한 주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