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안에 있는 기쁨

빌레몬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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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앞으로 계산하라 2. 친필로 쓴다 3. 순종할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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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으로 계산하라

지난 한 주를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하나님으로 인해 유익한 사람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받아드렸던 모든 청년들이 되었기를 소망해요.
우리 지난 이 주동안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정체성과 그로 인해 유익한 자가 되었음을 함께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오늘은 빌레몬서의 마지막을 나눌 예정인데, 말씀을 통해 여러분 안에 있었던 기쁨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요.
사실 우리 안에는 늘 기쁨이 있는데 우리가 그 것을 누리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숨긴적 없으나 나 스스로 숨겼던 그 기쁨을 다시 꺼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쉬고) 바울이 빌레몬에게 여러차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나는 너에게 절대 어떤 강요를 하지 않을거야.”
“너가 어떤 선택을 해도 나는 괜찮아.”
“어떤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아"
어떻게 보면 이렇게 반복해서 하는 말들이 “결국 답은 정해져있네"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바울은 절대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어요.
혹여라도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바울 때문에 억지로 용서하게 될까봐"
“그래서 그 마음에 바울과 오네시모를 향한 섭섭함과 미움이 남게 될까봐"
“이 것이 빌레몬의 믿음을 넘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에 “너의 결정에 나에 대한 감정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거에요.
(쉬고) 18절 “만일 오네시모가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말해요.
비록 오네시모는 일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가 담당해 오던 역할들이 있었어요. 그가 0.5인분의 일을 했다고 해도 그가 하던 자리가 있었겠죠.
그런데 만약 그가 빠져버리면?
1.5인분의 일을 하고 있던 누군가가 2인분의 일을 해야 하고 그만큼 노동력과 수입에 문제가 생기겠죠.
제가 카페 알바를 할 때 매니저가 있었어요.
그 때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않고 일을 시작했었는데, 카페 점장님이 그 친구를 굉장히 힘들게 했어요.
출근한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레시피 외우지 못한다고 머리를 툭툭 친다거나, 그 친구가 실수하면 그 앞에서 음료를 계수대에 쏟아버린다거나 하는 등 그 친구를 굉장히 인격적으로 힘들게 했어요.
저는 저녁 마감타임 알바였는데, 제가 가면 그 매니저 친구가 저를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울기도 했어요.
점장님이 우리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cctv로 보고 매장에 전화해서 떨어지라고 할 정도록 감시를 받기도 했어요.
이 매니저 친구가 그래도 3개월 정도를 버텼는데 저에게 “오빠 다음주 월요일이 그 날이에요"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매니저 휴가가나?' 싶었어요.
그 날 무슨 날이었을까요?
그 친구가 도망을 가는 날이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점장님이 “야!”라고 소리부터 치셨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유니폼을 점장에게 집어던지면서 “이런 대우 받으면서 일 안해!!”하면서 도망을 쳤어요.
그런데 또 이 친구가 너무 착해. 집에 가서 유니폼을 깨끗하게 빨아서 섬유유연제까지 해서 가져온거에요.
유니폼이 날라오는데 좋은 냄새가 풍겼어요. 그 친구가 도망간 것도 모르고 “와 향기 좋다"라고 저는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친구가 도망을 가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둘이 하던 일을 저 혼자 했는데, 하필 여름이었고 빙수가 정말 잘 나가던 매장이었어요.
노동력이 비어버리면 남은 사람은 정말 더 힘들게 되죠.
(쉬고) 오네시모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어요.
그가 돈을 훔쳤다고 했잖아요? 재정적인 손해도 꽤 많이 끼쳤어요.
골로새에서 로마까지 1,500km가 되었어요.
지금이어야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뭐 기차를 타고 가면 되지만, 이 당시는 아니잖아요. 이 거리를 도망가려면 돈이 정말 많이 필요했을거에요.
도착해서도 떵떵거리고 살려면 진짜 많은 돈이 필요했죠. 거기다가 이 당시엔 지금처럼 들고 다니기 편한 지폐도 아니었어요. 그런 수고로움까지 해가면서 그는 많은 돈을 훔쳐서 튀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빈털털이가 되어 감옥에 있다 나왔어요.
(쉬고) 그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요. 편지를 들고 돌아오기만 했을 뿐이에요. 만약 빌레몬이 “지나간 일 용서할게 그런데 여전히 넌 나의 노예니까 지금부터 무임금으로 일해야 해"라고 해도 할말이 없었어요.
바울이 그 것을 알았던 거에요. 그래서 “내가 대신해서 갚겠다"라고 말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진짜 좀 당황스러운 것은 바울도 감옥에 있잖아요.
그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후원금이 있다 해도 그 것을 갚을 만큼의 돈이 있었을리가 없어요.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 앞으로 달아두라. 내가 갚겠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거는 패기도 어떤 과한 객기도 아니에요.
바울은 그만큼 내가 오네시모를 아끼고 있고, 그가 변했음을 보증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거에요. 그리고 정말 빌레몬이 앞으로 그 모든 것을 달아둔다 해도 괜찮았어요.
자신은 기쁘게 갚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쉬고)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죠. 이렇게 가진 것을 갖고 행함으로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에요.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이라고 베푼 것이, 그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을 “늘 나의 기준" “내가 받고 싶은 것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베풀기 때문이에요.
과한 관심을 주거나 받기만을 요구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해요.
빌레몬 첫 설교 때 나누었죠.
누군가를 품어주고 사랑하고 섬겨주는데 있어 을이 되거나 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상대방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먼저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고, 내 안에 있는 정체성. 그리스도의 평강을 스스로 헤치면서까지 상대방에게 매여서는 안된다라고 나누었었죠.
(쉬고) 그래서 사랑이 어려운거에요.
나의 사랑과 관심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잘 몰라요. 그래서 자꾸 “내 식으로 베풀고 나눠주려고”해요.
사랑은 누군가 한 사람이 을이 되거나 약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함께 같은 마음을 갖고 섬겨주고 나눌 때 그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으로 다가와요.
(쉬고)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세요.
그런데 이 사랑은 좀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이에요. 우리는 그 분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분을 사랑할 수 없어요.
우리 삶에 그 분 말고도 눈이 가고 마음에 드는 것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은 한쪽으로 치우처진 찌그러진 사랑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쩔쩔매면서,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하면서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시던가요?
아니에요.
그 분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주세요. 우리가 뭘 하던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을 부어주세요.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랑을 역이용하죠.
‘내가 뭘 해도 용서하실거야. 기다려주실거야. 사랑하실거야'
(쉬고) 예수님이 우리의 태도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랑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안에 평강이 넘치기 때문이에요. 우리와 상관없이 그 분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기고 세워주기를 원한다면, 우리 역시 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일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해요.
그래야 정체성을 유지하며, 평강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겨줄 수 있어요.
(쉬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처럼”
“오네시모가 너의 속을 썩힐 때에도 그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사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봐주기를 바란다. 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새로운 관계는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던 거에요.

나 바울이 친필로 쓰나니

바울은 19절에 “내가 친필로 편지를 쓰고 있다"라고 밝혀요. 바울이 친필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에요.
바울이 편지를 쓸 때마다 그에겐 대필자가 있었어요. 로마서의 경우 더디오라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가 “친필"로 편지를 쓰고 있는거에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서 시력도 나쁜 그가 펜을 들어 한자 한자 써내려고 가고 있는 것이죠.
그가 친필로 편지를 쓸만큼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드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했던 거에요.
18절에 그가 “내가 갚을테니 내 앞으로 계산하라"라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나서 ”친필로 내가 글을 쓰고 있다!” 라고 바로 말하죠.
이것은 법적인 구속력이 나에게 있다! 라는 뜻이에요.
내가 직접 갚겠다라고 채무자가 직접 서명한 글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19절을 좀 더 살펴보면 좀 의아한 장면이 나와요.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쉬고) 본인이 다 갚겠다라고 해놓고, 갑자기 너가 나에게 빚진거 있긴한데 나 그거 말 안할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거든요.
뭔가 좀 치사해보이지 않아요?
“내가 다 갚을게!” 하고 끝났으면 굉장히 멋졌을텐데 “너가 나에게 빚진 건 내가 말하지 않을게"라고 말하잖아요.
어떻게보면 구질구질해 보이는 것처럼 보여요. 괜히 찝찝하잖아요.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빚진 거 나보고 갚으라는건가?”
“나 나쁜 사람 만드는건가?”
빌레몬이 바울에게 무슨 빚을 졌을까요?
(쉬고) 이것은 금전적인 빚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일을 하면서 자급자족해야 했던 바울은 넉넉했던 적이 없었어요. 그리고 빌레몬은 바울이 가진 것과 상관없이 이미 부자였어요.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은 사랑의 빚이에요.
복음의 빚이에요.
예수를 알았건 몰랐건, 그에 대한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게 해준 것은 바울이었어요.
옆에서 예수님에 대해 알려주고 말씀을 나누고 가르쳐주고 훈련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더 커질 수 있도록 해준 그 사랑의 빚을 말하고 있는거에요.
영적인 빚은 물질적인 것과 절대 비교할 수 없어요.
이 것은 결코 갚을 길이 없는 빚이에요.
(쉬고) 제가 얼마전에 초중고등학교 때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선후배들을 서울에서 만났었어요.
밥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당시 담임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리고 곧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철없던 시절 선교사가 되겠노라고 천방지축으로 살던 저
각자의 아픔과 상처들을 갖고 있었고 또 삐딱하게 살던 우리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해주시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주셨던 목사님이셨어요.
저에게는 정말 큰 멘토이자 또 다른 아버지라 부를만큼 큰 영향을 주시던 분이셨어요.
제가 신대원만 졸업하면, 목사안수만 받으면, 선교사로 파송시켜주겠노라고 말씀하시며 기도해주시던 분이셨어요.
군대에 있을 때 그 분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휴가를 나와 그 분이 계시는 병원으로 바로 갔는데 제가 알던 목사님이 아니었어요.
암으로 인해 수술도 하셨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정말 많이 야위신 모습이었어요. 군 제대 후에도 여러차례 찾아 뵀었는데 호전이 되는 것만 같았어요.
다행이다 생각하며 대학교에서 근로 알바를 하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왔어요.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데려가셨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 분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지 못했거든요.
그분이 주신 사랑과 나눠주신 말씀들을 통해 저는 예수님에 대해 더 확신하고 믿고 섬기게 되었는데, 그래서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서 그분에게 제자가 제자를 낳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 분께서 뿌리신 복음이 제 안에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전 당시에 대학생이었어요.
어떤 사랑의 빚도 갚지 못한 상태였어요.
저와 선후배들은 한목소리로 “목사님이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제 선후배들 지금 믿음 형편없어요.
그 사람들 어차피 이 설교 안들을거니까 말하지만 뜨거웠던 그 때와 비교하면 형편없어요.
세상에서 아주 열심히 살아가요.
그런데 그들 마음 속에는 언젠간 내가 교회로 돌아간다. 예수님 앞으로 돌아간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 목사님이 뿌리신 사랑. 복음의 빚이 우리에게 남아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쉬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너가 나에게 진 빚은 오직 ‘사랑. 복음’밖에 없다라고 말하는거에요.
렌스키라는 학자는 이 빚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은 두가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수를 전해주어 구원을 얻게 한 빚
못된 종이었던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해 선한 종으로 만들어 돌려보낸 것
그 빚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으나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복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빚"이라는 것이죠.

순종할 것을 안다

20절. 내 마음이 평안하게 하라.
이 것은 “알아서 잘 해라!”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너가 나에게 빚진 것은 묻지 않을게. 그러니까 내 마음이 평안하게 해라"
어떻게 보면 협박같아 보이는 말이지만, 바울은 절대 그런 의도로 이 글을 적지 않았어요. 그리고 빌레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어요.
“내 마음이 평안하게 하라" 라는 말은
“주님 안에서 그대의 호의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그대의 선택이 무엇이던 나는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 것이 나에게 평안을 줄 것입니다.” 라는 뜻이에요.
바울“내가 바라는 것이던 그렇지 않던” “그리스도 안에서 내리는 당신의 선택은 옳을 것이니 그 결과가 나에게 평안을 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20절 하반절을 보면 “내 마음”이 나오죠.
이 말은 7절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상하고 공허한 심장이 빌레몬 너에 의해 위로받고 있다. 위로의 은혜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오네시모도 “너의 선택이 어떠하던지” 그 것을 통해 위로 받고 새 힘을 얻을 것이다.
(쉬고) 18-20절에서 바울이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
“나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려고 용서를 선택하지 마라"
“난 너가 하는 어떤 선택이던지 존중할 것이다.”
“그 선택이 너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면 그 것으로 충분하다"
“나 때문에 너가 후회가 남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였어요.
그에게 어떤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쉬고)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을까요?
그저 감옥에서 만난 죄인일 뿐인 오네시모를 위해 왜 이렇게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을까요?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갈 때, 글 한 줄만 써줘도 감지덕지 할 텐데 왜 이렇게까지 편지를 써서 주고 있을까요?
(충분히 쉬고)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고, 삶으로 살아내려고 마음 먹었기에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거에요.
(쉬고) 여기 있는 모든 청년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구원을 받았을거에요.
여러분. 여러분에게 구원은 어떤 의미인가요?
구원이라는 이 단어가 여러분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나요?
(쉬고) 바울이 “나에게 모든 빚을 달아두라"라고 한 이 이야기사실 저와 여러분이 경험한 실제 이야기에요.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우리는 그렇게 나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을 알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대속물이 되셨다. 라는 표현을 하죠.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분 앞에 달아둔거에요"
“그분은 마귀에게 양휘석이 지은 모든 죄를. OOO이 지은 모든 죄를 나에게 달아두라"
“내가 내 목숨으로 계산하겠다. 갚겠다"라고 하신거에요.
(쉬고) 그렇게 저와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정체성을 부여받게 된거에요.
(쉬고) 빌레몬도 이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자신을 위해 예수님께서 모든 죄 값을 치뤄내신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오네시모를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거에요.
(쉬고) 바울은 빌레몬이 어떤 말을 하던 순종할 것을 알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사용된 순종은 ‘휘파코에라'인데, 이 것은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음" “하나님 뜻에 순종 할 것을 믿음" 이라는 뜻이에요.
이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십자가에 달리기로 하셨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에요.
정말 강한 의미를 가진 단어에요.
빌레몬은 이 “휘파코에라”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때가 되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라는 것을 확 깨달은 거에요.
(쉬고) 사실 바울은 이것이 과한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빌레몬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신뢰가 바울에게 있었 거에요.
(쉬고)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편지의 시작과 끝이 은혜라는거에요.
우리의 삶의 시작과 끝도 은혜라는거에요.
(쉬고) 여러분은 “은혜"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느낌이 오나요?
은혜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은혜는 지금 당신의 삶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나요?
(쉬고) 그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구원을 받았어요.
우리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달렸고, 예수님은 목숨으로 그 값을 치뤄내셨어요.
그 은혜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쉬고) 여러분에게 은혜는 무슨 의미인가요?
(쉬고)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심령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믿으시나요?
이 것을 믿지 못한다면, 아니 단순히 머리로만 믿고 넘어가버린다면
저와 여러분은 절대 은혜를 은혜답게 여기지 못할 것이고,
은혜로 인해 매일 생겨나고 있는 그 기쁨의 ㄱ자도 알지 못하게 될거에요.
(쉬고) 은혜로 시작해 은혜로 끝나는 편지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끝나는 우리의 인생
주 예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있다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빌레몬처럼
잊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었던 마음 속에 존재했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거에요.
(쉬고)
바라건데 저는 여러분 심령에 있는 그 은혜가 은혜로 여겨지는 삶이 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래요.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빌레몬처럼 기쁨과 위로가 관계 맺는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가기를 소망해요.
하나님 안에서 유익한 자가 되어 공동체를 섬기고 세워가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래요.
그리고 은혜가 삶의 기쁨을 되찾아주는 힘이 되기를 기도해요.
(쉬고)
이미 여러분 안에는 은혜로 말미암아 넘치는 기쁨이 존재하고 있어요. 그 기쁨을 꺼내어 맛보는 이번 한주가 되기를 소망해요.
저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단기선교팀과 함께 필리핀을 가게 되어요. 그 곳에서도 여러분의 삶에 기쁨과 평강이 넘친다는 소식을 듣기를 바래요.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소식을 전하도록 할게요.
이번 한주 “은혜로다.” 찬양을 함께 묵상하면서 내 삶에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와 내 안에 있는 감출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여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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