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과 다른 복음 / 갈 1:1 /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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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사도직을 강조한 이유는 대적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바른 복음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은 바울의 복음에 할례와 율법을 첨가한 저주 받는 복음이었다.

Notes
Transcript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새벽을 깨워주셔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한 주간의 삶을 되돌아볼 때에,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역할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멀리하고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갔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금 저희들에게 말씀하여 주사 구원자 예수님을 알고, 그 은혜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올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교회 소방설비를 놓고 기도합니다. 수많은 헌신의 손길들을 주님께서 하나하나 기억하여 주시고, 교회가 안전하게 되어가듯이, 우리의 인생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더욱 평안하게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오늘 장학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가 진행됩니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함께 하여 주셔서, 장학헌금이 잘 마련되고, 이 헌금을 통하여 우리 다음세대들이 예수님을 아는 세대로 세워주시옵소서. 아버지 행복한 사람들을 축제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웃과 직장동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자연스러운 만남과 대화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을 선포하는 설교를 듣도록 태신자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연약한 환우들 있습니다. 저들의 고통과 아픔 가운데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 저들의 상처 입은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에수님의 은혜가 더욱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며, 정신적으로 어려움에 겪는 성도들을 예인 공동체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주일 전날을 준비합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쉼을 허락하여 주시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더하여 주사 오늘 하루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 듣습니다. 오늘 말씀 듣고, 예수님 깊이 알고, 예수님 깊이 아는 은혜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1장 1절, 갈라디아서 입니다. 우리 말씀을 두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저의 노력으로 목사가 된 것이 아니고, 저의 지혜와 능력과 돈으로 목사가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목사로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 당연한 걸 왜 지금 엄목사는 말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그런데 만약에 교회 가운데 이단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뒤집어 놓았다고 칩시다. 신천지들이 잠입해서 성도들을 현혹시키고, 결국에는 성도들을 빼앗아가고, 지금 이 자리에 신천지 사상에 살짝 빠져있는 성도들이 있다고 해봅시다. / 그러면 방금 저의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저는 사람이 세운 게 아니고, 하나님이 세운 목사입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신천지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종, 하나님이 세운 목사인 저의 말을 들으십시오. 이렇게 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설명은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라는 것이지요.

본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들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전도 여행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사도 바울은 열심히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던 와중에, 매우 심각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다른 복음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어찌하여 다른 복음에 빠지게 되었던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다른 복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당시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납니다. 그 가운데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지요. 그런데 보수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해.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해. 우리와 같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해. 보수적인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겉으로는 복음을 전했지만, 사실은 다른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다가 할례와 율법까지 더한 ‘다른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어찌하여 이러한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일까요?
Galatians 1:6 NKRV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이들은 어찌하여 바울이 전했던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일까요? 이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존의 공동체에서 완전히 떨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매우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바울이 떠나고, 바울의 대적자, 바울을 미워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율법과 할례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유혹하는 것이지요.
먼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뽑힌 12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지요. 그리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유혹하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 있었는데,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면, 율법과 할례를 받아들이면, 그 회당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회당에 들어가서 한 공동체가 되면, 조금 더 안전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사도 바울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을 놓고 바울은 갈라디아서라는 서신을 편지로 작성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1장 1절에 바울은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Galatians 1:1 NKRV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분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자랑하려고 1장 1절에 적은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직분. 사도라는 직분이 의심받는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요? 바울의 사도직이 의심을 받아버리면, 무슨 일이 생겨버립니까? 자신이 전했던 그 복음이 의심받는 것이지요. 바울은 사도직, 사도라는 자리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도직이 의심을 받아버리면, 사도직분의 권위가 흔들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1장 1절에 가장 먼저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분명하게 적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사도직을 제대로 변호한 후에 그 다음에 복음을 다시 한 번 설명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마음 안에 있던 바울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했던 그 복음을 다시 듣게 됩니다.
Galatians 1:4–5 NKRV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다시금 복음을 듣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복음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이미 들었다고,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에, 넘어지게 됩니다. 다른 복음이 들어오는 것이지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향해서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Galatians 1:8 NKRV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천사가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해도 저주를 받는다.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존재로서, 매우 두렵고 강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 천사들도 저주를 받아. 그러니까 당연히 바울의 대적자들도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 바울이 전한 복음. 이 복음만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붙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힘든 상황이 이들에게 찾아왔습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앞에 결국 율법과 할례를 복음에 섞어버린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직 예수님만을 외치고 있지만, 자꾸만 우리의 신앙생활에 다른 것들을 넣기 시작합니다. 다른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넣으면서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변질시켜 가는 것이지요. 어쩔 수 없어. 이게 현실이야. 남들도 다 그래. 이러한 이해가 되는 변명들을 하며 오직 예수라는 그 순수한 복음에 다른 것들을 넣어서 다른 복음으로 바꾸어 버리지 않습니까? 자꾸만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공로를 넣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행위를 넣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에서 핵심적인 내용으로 복음과 행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복음을 강조하면서 예수님만 믿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지요. 바울은 공로, 행위, 행함 그 자체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함은 복음과 어떠한 관계에 있습니까? 복음의 은혜를 깊이 누리게 되면, 그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행함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복음을 주장하는 바울의 대적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도 믿고,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켜야 해. 이렇게 복음을 왜곡시켜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과 주일날 교회 가운데 수많은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 수많은 헌신과 봉사들을 왜 하시는 겁니까?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 빚을 진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서 반응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오늘과 주일날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실 때에, 공로를 만들려고 헌신하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터져나오는 감사의 반응으로, 특별히 주일날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사역들을 은혜로 감당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이 시간 주기도문 하심으로 모든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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