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곳이 없다

야곱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1. 고향으로 돌아 갈 마음을 먹다 2.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3. 내 삶에 믿음으로 나뭇가지를 꽂으라

Notes
Transcript

고향으로 돌아 갈 마음을 먹다

지난 주 합순 아웃팅하면서 올린 사진들 보니 즐거웠던것 같더라구요? 합순 할 때만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인사하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래요.
(쉬고)
오늘 본문은 야곱과 라반의 마지막 머리 싸움이 시작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야곱이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냥 가도 되었을텐데 굳이 라반에게 이야기 했던 것은, 당시 문화 때문이에요.
이동하여 다른 지방으로 갈 때는 지도자의 허락을 먼저 받았어야 했어요.
현재 야곱은 라반의 집에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허락을 받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사실은 “나 말리지 마. 고향으로 돌아갈거야!”에 가까운 의지를 말하고 있어요.
“나는 갈 것이다"
“나를 잡지 마라"
(쉬고)
그런데 문제가 한가지 있었어요. 그 것은 바로 “야곱이 가진 것이 없었다.”라는 것이에요.
14년이 넘는 시간을 뼈가 빠지게 일을 했는데, 야곱은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결혼을 하면 그에 따라 분깃을 받게 되고 그 것을 활용하여 재산을 불려나갔는데, 야곱은 그런 시간을 하나도 갖지 못했다라는 것이죠.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면 야곱은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어요.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가더니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왔다!”
“하나님이 너를 버린거야!” 등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이야기들을 들었을거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이 곳은 자신이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는 사실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땅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쉬고)
야곱이 아내들은 먼저 설득하는 과정을 가져요.
“나 그동안 당하고만 살았어!!”
“자기들도 알잖아! 품삯을 열 번이나 강제로 변경 당했다고!!”
여기에서 말하는 열번은 진짜 열번이 아니에요. 10이 완전수라서 10이라고 말한거에요.
열번만 변경한 것이 아니라 수시로 계속해서 품삯이 변경된거에요.
야곱은 그런 모든 순간들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했어요.
‘집에 연락해서 결혼 지참금을 보내달라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일하기로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였어요.
(쉬고)
야곱은 아내들에게 계속 이야기 해요.
“너희 오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내가 그 들판에서 혼자 양들을 칠 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막으셨기 때문이야"
“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이제 안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난 여기에서 재물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부모님이 있는,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어!”
(쉬고)
야곱만 손에 쥔 것이 없는 14년이었어요.
야곱으로 인해 라반의 집은 엄청난 복을 받았어요. 라반의 재산이 미친듯이 불어났어요.
예를 들어, 야곱이 라반의 집에 갔을 때 양이 3천마리가 있었다고 한다면, 야곱이 간 이후 6천 마리 이상으로 늘어날만큼 엄청난 복이 그 곳에 있었어요.
그런데 야곱만 손에 쥔 것이 없었던 것이죠.
왜요?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선택했고,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들을 불살랐기 때문이에요.
야곱은 자신은 얻는 것이 없는데, 라반이 부자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꼈어야 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흘러가고 있구나! 내가 그런 하나님을 잊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어야 해요.
그런데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아니 못했어요.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이에요.
(쉬고)
내 힘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 했는데 안됐어요. 자기 힘으로 결혼을 이루어냈는데, 힘겹게 이룬 가정에 평화가 없어요.
맨날 싸우고 죄 짓고, 서로 헐 뜯기만 해요.
그것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데, 얘들을 먹여 살릴만한 자신의 재산이 하나도 없어요.
마치 ‘엄카’처럼 야곱에게는 ‘장카. 장인어른 카드'만 있었던 거에요.
(쉬고)
야곱과 라반은 마지막 품삯 협상 테이블에 앉아요.
야곱은 “지난 14년동안 10번 이상 품삯을 변경했던 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이제부터 내가 재산을 모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안을 던져요.
그러면서 조건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두 종류로 분류해서 딜을 시작해요.
“흰색 양, 검은 염소는 무조건 장인어른 것"
“뭐든 색깔이 섞여 있는 짐승은 다 나의 것"
(쉬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기업을 가져가겠다.
내가 내 분깃을 챙겨서 돌아가겠다!
내 소유가 당신보다 많다해도, 내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여겨달라!는 최후 통첩을 날려요.
(쉬고)
라반은 “콜!”을 외치고, 머리를 쓰기 시작해요.
흰색 양과 검은 염소는 우성 인자이고, 색깔이 섞여 있는 것은 열성 인자에요.
열성 인자끼리 교미를 하면 열성 인자를 가진, 얼룩 있는 짐승들이 태어나는 것을 라반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열성 인자를 갖고 있는 짐승들을 분리해요.
자신의 아들들에게 얼룩있는 짐승들을 주고, 야곱과 사흘이나 떨어져서 길을 가도록 지시했어요.
(쉬고)
야곱에게 남은 것은? 흰색 양과 검은 색 염소. 우성 인자 뿐이에요.
(쉬고)
야곱은 라반이 또 다른 소리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썼는데, 라반이 또 야곱을 이겼어요.
흰색 양과 흰색 양이 교미를 하면 흰색 양이 나올 확률이 거의 99.9%죠.
야곱은 또 다시 세상에 졌어요.
실력 없는 믿음으로 세상에 덤볐다가 또 지고 나가 떨어질 위기에 처했어요.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야곱에게 있어 라반은 절대 이길 수 없는 끝판 왕과 같은 존재였어요.
야곱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망치는 악과 같았죠.
여러분 악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나요?
악을 이기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더 큰 악으로 이기거나" “선으로 악을 이기거나"에요.
(쉬고)
악으로 악을 이기려면 나도 악인이 되어야 하겠죠. 이건 별로 현명하지 않은 방법이에요.
“여러분 똥이 무서워서 피해요? 더러워서 피하잖아요.”
굳이 내가 내 손에 똥을 묻혀가면서 더 큰 악인이 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우리가 닮아가기를 원하는 예수님은 “악을 선으로 갚으신 분"이시잖아요?
우리도 악을 선으로 갚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라는 것이죠.
악을 선으로 갚는 것.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을, 세상에 사는 사람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들보다 더 큰 악인이 될 수 없거든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는 신앙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괜히 악한 척, 쎈 척하면 더 크게 당해요. 진짜 크게 얻어 맞아요.
세상은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잘나고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온갖 술수를 다 사용하는 세상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쉬고)
야곱이 1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몰라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사용하여 짐승을 두 분류로 나누었는데, 세상이 또 자신을 뛰어 넘었어요.
실력 없는 믿음으로 덤볐다가 또 깨지게 된 것이죠.
사실 14년동안 하나님을 잊지는 않았어요. 다만 전심을 다해 믿지 않았을 뿐이에요.
(쉬고)
이제 야곱에게 남은 방법이 없어요.
더 이상 내놓을 묘수가 없어지자, 야곱은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해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기도해요.
기도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쉬고)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그리고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들을 모았어요.
안에 있는 흰 무늬들이 나오도록 가지들의 껍질을 벗겨요.
벗긴 나무 가지들을 양 떼들이 물 먹으로 오는 곳에 꽂기 시작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천에다 양들을 먹일 수 있는 수로를 냈는데, 양들이 물을 먹으면서 그 나뭇가지를 보도록 하는거에요.
이 무늬가 있는 가지들을 보면서 교미하도록 하는거에요.
(쉬고)
여러분 이게 말이 되나요?
무슨 마술도 아니고, 이런 나뭇가지를 보고 물을 마시고 교미를 하면 얼룩진 것들이 태어난다? 이게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인가요?
미친 짓이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가 하나님을 붙들기 시작해요.
나뭇 가지를 벗기면서 그리고 강에 꽂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거에요.
근 20년만에 자신의 힘을 빼고 하나님을 붙들고, 그 분의 힘을 구해요.
(쉬고)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얼룩진 새끼들이 태어나요.
심지어 본인이 키우던 양떼의 두배가 될만큼 얼룩진 것들이 쏟아져요.
(쉬고)
야곱이 라반이랑 최종 협상을 할 때 뭐라고 했죠?
14년 동안 벌어드린 것은 다 라반의 것 그리고 지금부터 태어나는 것은 다 나의 것이라고 했잖아요.
사흘 길이나 떨어져 있어서 열성인자들끼리 교미가 불가능했어요. 우성 인자에서 열성이 나오는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야곱은 최종 협상에서 불공정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쉬고)
그런데 이상하게 야곱이 기르는 짐승들에게서 얼룩진 것들이 쏟아져 나온거에요.
여러분 이 내용이 이해가 가나요?
나뭇가지 세개를 벗기고 꽂았을 뿐인데 그 것을 보고 물을 마시고 교미한 짐승들이 열성 인자들만 줄줄이 낳았다는 이 이야기가 여러분 이성적으로 이해 되세요?
(쉬고)
그런데 사실 여러분은 (쉬고) 그것보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들을 믿어 왔어요.
우리가 읽고 보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드리는 이 성경은, 이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요.
하나님이라는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데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어요. 그리고 부활하셨어요.
그 분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다시 회복이 되었어요.
우리가 구원을 얻어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어요.
(쉬고)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신 분이셨기에, 나뭇가지를 통해 우성 인자가 열성 인자를 낳을 수 있도록 하신거에요.
(쉬고)
정신없이 도망치다 골아떨어졌던 루스. 벧엘의 밤에서 만났던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어요.
하나님은 단 한번도 그의 곁을 떠난 적 없으셨고, 그를 붙들어 오셨고
그가 힘을 빼고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길 때까지 기다리셨어요.
야곱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셨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야곱이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쉬고)
우리의 삶도 동일해요.
내가 붙잡고 있는 그 것을 놓아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요.
야곱은 미친 짓인 것은 알지만 나뭇가지를 벗기고 꽂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그렇게라도 해야 했던거에요.
자신의 힘과 머리로는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존재인 라반. 그 세상을 이기려면 이제는 하나님 밖에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쉬고)
여러분 혹시 등산 가봤어요?
저는 3년 전에 한라산을 올라갔었어요.
백록담으로 올라가는 길은 성판악과 관음사 두 가지가 있는데, 성판악은 원만하게 올라가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코스이고, 관음사는 빡씨지만 성판악 보다는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코스에요.
제가 한라산을 간다고 하니까 맡고 있던 부서의 부장선생님께서, “목사님 남자라면 관음사지예. 성판악 가면 안됩니더"라고 하시는거에요.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서 관음사로 올라갔는데, 부장님이 저를 한라산에 묻으려고 하셨구나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어요.
등산을 다니지 않는 사람이 가기엔 생각보다 빡씬 코스였던거에요. 심지어 초반에 나댄다고 데크 계단을 힘차게 뛰어 올라갔더니 더 이상 못가겠더라구요.
진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올라갔어요.
“정상에 올라갔다고 뻥칠까?”
“내가 부장님에게 이 정도로 죽을 잘못을 한 것일까?”
“가다가 발목 다쳐서 못갔다고 할까?”
정상에 가야겠다! 라는 생각은 1도 안하고, 오로지 어떻게 이 등산을 멈출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만 했어요.
(쉬고)
그런데 제 앞에 저보다 작은 한 여성분이 너무 가볍게 산을 올라가시는거에요. 뭔가 갑자기 자존심 상해서, ‘내가 저 분만큼은 아니, 저 분보다는 한 걸음 더 많이 간다.’ 생각하고 따라갔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니 백록담 앞에 제가 서 있었어요.
(쉬고)
산에 올라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에 올라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죠.
올라갔으면 이제 뭐해야 해요?
내려오는 문제가 남아 있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려 갈 때는 좀 더 쉬운 성판악으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차가 관음사 코스 쪽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관음사로 내려 가야 했어요.
(쉬고)
내려오면서, “119에 신고해서 내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쳐서 못내려간다고 할까?” 라는 생각을 정확하게 11820번했어요.
그만큼 내려 오는거 진짜 빡쎄요. 올라갈 때는 그래도 힘이 남아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꾸역 꾸역 올라갔는데, 내려 올때는 다리에 모든 힘이 걸려버리니까 진짜 걷는게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쉬고)
등산은 내려 올 때가 더 힘들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올라가지 마요.
(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이 이와 같아요.
우리도 앞만 보고 걸을 때가 많죠.
그 것이 등산을 하는 것처럼 올라 갔다 내려 갔다 하고, 또 자갈 밭이어서 힘든 길이라 해도 무엇이 되었던 ‘내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길을 계속 걸어가요.
힘이 있으니까, 내가 해결 할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우아아아"하면서 막 걸어가는거에요.
그러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게 되면, 내가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지게 되면 그 때 우리는 두려워지는거에요.
두려워지는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떠올리고 붙잡게 되는 것이죠.
(쉬고)
여러분 멀리 가지 마세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지금도 딱 붙어 계셔요.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의 심령에 딱 자리를 잡고 앉으셔서 여러분을 계속해서 선한 길로 이끌고 계셔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길이 옳고 맞는데,
왜 우리가 그 길 걷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는지 아세요?
매력적이지 않거든요.
하면 안되는 것 투성이거든요.
재미가 없거든요.
내가 더 참아줘야 하거든요.
(쉬고)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세상은 너무 매력적이고 선택하면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인데,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해요.
고개만 돌리면 재미있는 것 투성인데, 나는 보이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야 하거든요.
(쉬고)
여러분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셔요.
괜히 멀리 가서 야곱처럼 무너진 다음에서야 하나님을 찾지 말고, 이미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잡으세요.
(쉬고)
여러분 기도 하죠. 기도가 뭐에요?
기도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거에요.
기도는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는 항복의 고백'이에요.
(쉬고)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세요.
하나님과 함께 걸어왔던 흔적만 남아 있는 삶 아니었나요?
내 삶의 고비마다 나를 세워주시고 살려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지 않았어요?
(쉬고)
야곱은 나뭇 가지를 붙들고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고 고백했어요.
너무 염치 없지만, 멀리 돌아와서 이런 기도하기 참 부끄럽지만
“나에겐 하나님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을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라고 고백한거에요.
(쉬고)
임마누엘의 하나님. 단 한순간도 떨어진 적 없던 분께서, 그의 고백을 듣고 일하시기 시작해요.
아니, 야곱은 자신의 기도와 고백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거에요.
그리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나와 함께 하고 있구나 생각해요.
(쉬고)
같은 시각 라반은 굉장히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을거에요.
사흘길 뒤에 있잖아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얼룩진 짐승들이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 확신도 했어요.
정말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 방법 때문에 결국 야곱에게 더 많은 짐승을 주고 보내게 되어요.
정말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 방법 때문에 결국 야곱에게 더 많은 짐승을 주고 보내게 되어요.
본인도 아들들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얼룩진 짐승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것을 몰랐거든요.
야곱을 방해하려다가, 오히려 야곱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했어요.
(쉬고)
대략 라반이 암컷 수컷을 5천 마리씩 갖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해요.
다시 만난 야곱이 그 2배 1만 마리를 갖고 있었어요.

내 삶에 믿음으로 나뭇가지를 꽂으라

경악하는 라반에게 야곱은 당당하게 고백해요.
“내 힘으로 두 떼의 양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부당한 방법으로 짐승들을 교미시키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을 뿐이다.”
“나의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쉬고)
야곱. 거의 20년만에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쉬고)
야곱이 만약 거짓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했던 것이라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만 기도했다면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을거에요.
그는 또 “내가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낳게 했다.”라고 떠벌리면서 자신을 드러냈을거에요.
그의 삶이 계속 그래왔잖아요. 20년 전, 우물가에서 처음 라헬을 만났을 때 처럼 하나님을 숨겼을거에요.
그런데 그가 이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높이기 시작해요.
(쉬고)
여러분의 요즘의 삶은 어떠한가요?
제가 말씀을 나눌 때마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말씀을 통해 변화되는 삶의 은혜"가 우리에게 매일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오늘의 야곱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달리며 나뭇가지를 꽂고 있었나요?”
아니면 어제의 야곱처럼 “내 힘과 능력 그리고 경험을 의지하며 살아왔었나요?”
(쉬고)
야곱의 고백.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하지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나뭇가지를 꽂는 것이 신앙이에요.
야곱의 고백.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가져야 하는 바른 신앙의 모습이에요.
(쉬고)
여러분의 삶이 자리를 어지럽히는, 어렵게 만드는 라반은 무엇인가요?
(쉬고)
그 라반이 아무리 커보여도,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고 일의 진행이 더뎌보여도 물러서지 마세요.
용기를 내세요.
야곱처럼 하나님의 신적인 개입을 갈망하세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우리 모두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으신 분이에요.
왜!?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우리를 지키시겠다는, 우리를 반드시 살려 건져내시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내야 하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스스로에게 부여하신 우리를 붙들어야 한다는 약속과 의무를 반드시 완성시키셔야 하는 분이거든요.
(쉬고)
여러분의 삶에 라반이 있나요? 그렇다면 오히려 좋아하세요. 감사하세요.
우리도 야곱처럼 “내 힘을 빼는 훈련을 받는 중이구나"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세요.
저와 여러분을 다듬기 위해, 아름다운 보석으로 가공하기 위해 상황을 주셨을 뿐이에요. 그 상황을 절대 우리를 망하게 하거나 완전히 파멸 시킬 수 없어요.
(쉬고)
우리는 “지금 힘을 빼는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에게 투덜대지 말고 나를 훈련시켜주는 도구라 생각하고 바라보세요.
유혹에 굴복하여 싸우지 마세요.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를 축복하겠다.”
“족한 은혜를 주겠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겠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개입을 갈망하면서 버텨내세요.
(쉬고)
우리가 버티면, 세상은 우리를 더 거세게 거칠게 몰아세울거에요.
여러분 그 때만 버티면 돼요. 그 때만 견디면 돼요.
(쉬고)
라반은 야곱과 불공정 계약. 자신이 더 유리한 계약을 맺었어요. 그런데 야곱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자, 아들들과 함께 도둑놈으로 몰아세워요.
야곱으로 인해 얻게 된 것이 더 많으면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해서 결국 야곱을, 자신의 딸들과 결혼한 사위 야곱을 도둑이다 말하면서 다 빼앗으려 했어요.
(쉬고)
그때 야곱은 싸우지 않았어요. 오히려 31장 7절. “하나님이 나의 고난을 보셨다.”라고 고백해요.
(쉬고)
하나님은 야곱의 이 고백을 듣기 위해 20년을 기다리셨어요.
라반을 사용하셔서 드디어 야곱을 바꾸셨어요.
(쉬고)
그것처럼 당신을 바꾸기 위해, 여러분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라반을 준비하셨어요.
라반이 없는 인생은 없어요. 하지만 그 라반은 영원히 우리에게 머물지 않아요.
(쉬고)
야곱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에 자유를 반드시 얻어요.
오늘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여러분으로 기필코 세워주실거에요.
(쉬고)
이번 주 미션이에요.
“물 위를 걷는 자.” “주님 여기 계시기에" 이 찬양을 듣고 묵상하세요.
(쉬고)
출퇴근, 등하교 할 때 찬양을 듣고 묵상하고, 찬양이 끝나면
“하나님 내가 물 위를 걷겠습니다.”
“내 삶에 믿음으로 나뭇가지를 꽂겠습니다!”라고 고백하세요.
(쉬고)
이 고백이 “내 삶의 라반을 이겨낼 넘치는 힘이 될거에요"
그 고백을 매일 올려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