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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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 예비한 주의길을 우리도 예비하라

Notes
Transcript

소리란 무엇인가?

배경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이며, 회개하라는 권면은 그의 ‘소리’였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그분이 사역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며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였습니다.
구약 말라기에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엘리야의 심정으로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했던 요한이 구약에서 예언하고 있는 말라기 선지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길이란?
요한이 예비 했던 길은 주의 길이었습니다..
주의길은 예수님의 길입니다. 이 길을 예비하는 사역은 참으로 어려운 사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길은 좁고 사람들이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를 자신의 생활 환경을 통해 말씀합니다.
그는 낙타널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습니다.
낙타털이나 염소털 옷은 가난한 사람들과 광야에서 거하는 사람들이
주로 입던 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모든 사치를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 놓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크나큰 영광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라는 고난의 길 또한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앞에서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아야 하고....
명예 앞에서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아야 하고...
권력 앞에서도 자신을 부인할 줄 알아야 하는 길이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요한은 바로 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그리고 그 길을 많은 사람들이 시청각적으로 볼 수 있도록
광야에서 크게 외쳤을 뿐 아니라, 옷도 남루하게 입고, 먹는 것도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
물세례와 성령세례
요한의 사역 중 가장 특이한 사역이 있다면 그 것은 세례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가리켜 ‘세례 요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당시 세례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례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행위였습니다(9절).
세례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이제부터 새롭게 살겠다는 다짐을 공표하는 예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지은 죄에 대해 꾸준히 회개하며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항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형식과 의식만 남은 죽은 종교였습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특권 의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권의식이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 구원하시고,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가리켜 “독자의 자식들”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을 들어서도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만들 수 있는 분”이라 말하며
요한은 사람들에게 특권의식(선민사항)을 버리라고 말합니다(9절).
요한은 이와 같은 ‘주의 길’을 예비했던
광야에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증거하는 ‘소리’가 돼야 합니다.
소리에는 4가지의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음고입니다.

음고는 음의 높고 낮음을 말합니다.
음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은
음의 높낮이를 표시해 놓은 계이름이 있습니다.
소리에도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소리가
소음이 되지 않고 우리 귀에 들릴 수 있는 멜로디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400년 동안
하나님의 질서를 외치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 시기를 가리켜 신구약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400년의 침묵을 깨고
하늘의 질서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소리는 분명한 질서를 담고 있는 소리였습니다.
도 다음 레, 레 다음 미가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질서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는 인생이란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먼저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세요!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소리에는 분명한 질서, 즉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우리가 온전한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다양한 인생 시험을 경험하게 되는
광야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낙타털 옷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던 옷이었습니다. 그는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으로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무수한 소리가
세상에 들려오지만 실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우리는 귀를 막고 싶어집니다.
그 이유는 그 모든 소리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 자식 자랑,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세 자랑,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소리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세례요한은 그런 점에서 세상을 등지고 금욕주의적인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금욕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따라 살 수
없을 뿐이지 금욕주의가 하나님을 향한 자기 절제의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삶을 사는 자들을 세례 요한처럼 높여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자기 비움과 타인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와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교만에서 시작된 금욕주의는 그 끝이
허무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 소리를 차단하고 하늘의 소리를 대언하고자
광야에서 금욕주의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의 소리는 질서를 따라 또 다른 단계의 소리로 확장돼
‘회개’라는 소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구약 백성들에게 있어서 회개는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
행실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와 같이 말씀했던 것이지요.
8절 말씀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구약과 신약의 경계에서 회계를 외치고 있었던
세례 요한은 그의 소리를 통해 회개가
행실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조점에서
마음의 변화를 촉구하는 강조점으로
넘어가는 회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리를 통해 자신이 예비하고자 했던 다양한
것들을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 마저도 사용하시어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회계인 메타노이아는
마음을 바꾸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행실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종교적 행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없고도 행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소리를 통해 소리가 도에서
미로, 미에서 파로 나아가는 것과 같이
회개도 구약의 회개인 ‘행동의 변화 촉구’에서
신약의 회개인 ‘마음의 변화’로 나아가도록
하는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소리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나와 여러분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마저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소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게
만들었고 그로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백성들에게 있어서 천국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구약 백성들은 천국을
두려움과 엄숙함이 있는 공간적인 개념으로 한정하여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소리는 천국을
공간적인 장소의 개념을 넘어 우리 마음에 임해 있는
상태로써의 천국을 준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신약의 천국은 죽어서 심판 받고
들어가는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 이미 이 세상에 임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재림하실 때 까지 그 천국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의 천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미 우리 마음에 임해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받는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 재림 때까지 그 통치는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맛보게 되는 하나님 말씀의 통치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받음으로 천국의 기쁨을
여러분들의 심령에서 느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소리의 요소는 소리의 세기입니다.

리코더의 소리보다 트럼펫의 소리가 그 세기가 큽니다.
세상 교훈과 철학 그리고 종교의 소리의 세기보다 더 센 소리로
세례 요한은 외칩니다. 7절 말씀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바리새인은 유대교가 그 근본이 퇴색하고 세속화 되어가는 것을 경계하고자
율법적인 형식과 의식을 강화하여 날과 절기, 예배 의식, 먹어야 할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법, 안식일등을 철저히 지켰던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자신들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허무함을 경험하고 자신의 소리보다
세례 요한의 소리가 더 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그 임박한 진노를 피해보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는 현장에 그들이 찾아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그 현장을 찾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내면에서 울리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가 더 세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나요?
마태복음 12장 27~2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바알세불 귀신의 왕의 힘이 셀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힘이 셀까요? 분명 29절 말씀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귀의 나라보다 더 강한 능력으로 우리 심령에 임하였기에
우리 안에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란 소리가 쫓겨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를 믿고 보다 센 소리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소리의 구성요소는 소리의 장단입니다.
소리의 장단은 소리의 길이입니다.
세상 소리는 영원할 것과 같이 외치지만 대부분
금방 사라지는 게 특징입니다. 그에 반해 세례 요한의 소리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길고 오래갔습니다. 결국 2000년 후에 태어난 우리에게까지
그 소리가 들려오게 되었고.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소리는 뻗어나갈 것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자신이 감히 세례를 줄 수 없는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길고긴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소리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전에 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인 예수님께서 자와 여러분들의 형편과 처지를 공감하시도록 하시기 위해
또한 우리의 죄를 사하실자로 세상에 공포하기기 위해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소리는 일시적인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셨던 소리셨습니다. 여러분 세상 소리는 잠시 잠깐만 크고 요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리는 아주 길고 영원토록 울림이 있는 소리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 길고긴 소리에 순종하여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리의 구성 요소는 음색입니다.

음색은 소리의 색, 질 또는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거칠고 탁한 소리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우리는 선호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오늘 본문 말씀은 끝을 맺습니다.
이 소리가 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일까요?
그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등장하시어
아름다운 하모니로 만들어낸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절과 17절에는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그리고 하늘이 열리어 운행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등장하시어 최상의 하모니를 이루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100% 신이시고 또 100%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소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신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의 종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발적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고난의 종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매우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요한과 같이 우리도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분명 우리가 의도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소리를 통해 그 분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나갈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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