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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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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Transcripts

“나와 같이 되기를”

“나와 같이 되기를”
&29 (NKRV)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intro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시는 스포츠가 있습니까? 저는 스케일이 큰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꽤나 광적으로 좋아했습니다. 월드시리즈가 되면 월차를 내고 지켜보았고, 선수들의 이름과 특징을 줄줄 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야구를 보면서 한 가지 인생에 접목할 만한 중요한 원리를 선수들의 인터뷰를 통해 발견 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될만한 야구 선수들 특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슈퍼스타 선수들이 반드시 메이저리그 입성 전에 가는 곳이 있습니다. 어딜까요? 교회? 역시 반석 청년들 경건합니다. 교회는 아니고 바로 하부 리그인 마이너 리그에 단 하루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슈퍼스타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무엇을 배운 걸까요?
그들은 하나 같이 이야기 합니다. 실패를 배운다. 실패하는 방법을 배운다. 나의 이런 저런 플레이가 삼진을 당하고, 안타를 못치는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을 코치의 조언을 통해 듣고 끊임없이 그곳에서 실패의 모습을 반복하며 드디어 때가 되었을 때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그들은 실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에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무엇부터 배우고 싶어 합니까? 성공 스토리에 집착하는 세상에 있지 않습니까? 실패로부터 출발하지 않습니다. 실패자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출발이 실패였다는 것입니다. 어느 환경에서 태어났건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기에 실패로 출발 했습니다.
여기 한 스토리를 가진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입니다. 이 본문까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를 방문하고 오순절 절기가 끝날 쯤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고 천부장 앞에서고 다시 공회로 공회에서 가이사랴로 호송되고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 섰고 그의 후임은 베스도와 분봉왕 아그립바 앞에서 로마로 이송되기 전 변론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잡혀야 했고 변론해야 했을까요? 그는 사도행전의 핵심인 높아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서의 예수님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변론하는 베스도, 아그립바, 그리고 바울 이라는 세 사람의 초상은 이 땅을 오고 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가진 복음에 대한 반응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세 사람의 언행이 복음에 대한 인생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투영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청년들의 복음에 대한 자신의 모습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모습인지 보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는 여러분들이 진리안에 거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Ⅰ. 복음에 대한 조롱 베스도
먼저 우리가 볼 인물은 베스도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통치하는 로마 총독의 신분을 가진 자였습니다. 베스도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에 대항한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고, 혁명에 가담한 자들을 잡아들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유대를 다스렸던 대부분의 총독과 달리 매우 공정하고 협조적이었다고 합니다. 즉 베스도는 높은 신분과 지위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도 발군의 실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어쩌면 도덕적 수준도 높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의 변론 앞에 변론이기 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바울의 전도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베스도가 보인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NKRV)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는 “바울의 많은 학문이 그를 미치게했다”고 합니다. 베스도의 이 발언에는 그가 유대교와 기독교에 상당히 무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헬라와 로마의 수사학적 능력을 갖춘 소위 가방끈 긴 바울이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의 부활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베스도의 초상입니다. 세속적 신분과 지위 그리고 상당 수준의 도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음 앞에서 그 진리를 경멸과 조롱으로 대합니다. 로마인 베스도에게 그 부활의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누구의 모습과 닮았습니까? 지적인 자랑을 뽐내는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총균쇠를 쓴 제럴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미국 회의주의 집단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셔머 등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복음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이름은 몰라도 여러분은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의 모습을 일 수 있고, 회사에서 여러분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커피를 건네 상사 그런 상사 있어요. 일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윤리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사람들이 많지만 복음 앞에서는 베스도처럼 그 진리를 경멸과 조롱으로 대하는 사람이 많음을 보시지 않습니까?
Ⅱ. 성경적 지식을 갖춘 아그립바 왕
그에 비해 아그립바 왕은 총독 베스도에 비하면 상태는 조금 더 나을 수 있어 보입니다. 아그립바는 헤롯대왕의 후손이기에 그는 정통 유대인은 아니더라도 유대 공동체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베스도가 무지했던 유대교 그리고 심지어 예수라는 이름도 들어 봤을 것이고 구약의 율법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26절
(NKRV)
26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한쪽 구석” 즉 비밀스럽고 감추어진 이야기가 아닌 이 세상 역사에 공적으로 선언되고 선포되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왜? 아그립바 왕이 알지 못함이 없는 줄 안다고 바울이 이야기 했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공생애 이스라엘의 전역에 퍼진 그분의 이야기를 유대 공동체에 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모습을 잠깐 살펴보죠. 함께 읽겠습니다.
&24 (NKRV)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아그립바는 베스도에 비해 복음을 더 많이 알았고 예수도 누군인지 알았으며 그분이 이 땅에 많은 사람들에 어떤 영향력을 주었는지 알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계속하여 바울의 발언이 아그립바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 합니다. 27절 제가 읽겠습니다.
(NKRV)
27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선지자를 믿으시는 줄 안다는 것은 아그립바가 구약의 이야기를 잘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발언 아그립바는 어떻게 대응 합니까?
(NKRV)
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적은 말로”의 원어 뜻은 “짧은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바울아 네가 말하는 것은 꽤 그럴듯하며 곧(짧은 시간) 나를 회심시키겠구나”라고 아그립바가 말한 것입니다.
아그립바와 같은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 입니까? 사실 교회 내에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 비해 예수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진리에 가까이 나오지 못하는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롯의 아내의 같은 모습 아닙니까? :26를 함께 찾아 봅시다.
(NKRV)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보았습니까? 진리 앞에 구원에 대한 불신과 하나님께 나아오고자 의지가 결여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아그립바와 같은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있습니까? 예수가 누구신지 알지만 나아오지 못하는 것은 불신 때문입니다.
Ⅲ. 바울 나와 같이 되기를
여러분 주변에는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같은 초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의 가족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십니까? 여전히 내일 만나는 여러분의 친한 친구들도 베스도와 같은 경멸로 복음을 대하고 직장의 동료도 그와 같을 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은 그들을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반응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퍼할까요?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바울의 29절과 같은 고백이 우리 심령에 살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 와 같이 되기를”
무엇이 이 바울을 그리스도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확고히 있음을 확신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실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분명히 그의 과거의 스토리를 통해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10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으며, 예수 믿던 자를 박해하던 자였으며 그 일을 자랑스러워 했던 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리가 있음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두 길 가운데 주저하는 인생이 많음을 봅니다. 베스도도 아그립바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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