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신 그리스도와 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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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찬송가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 김영순 권사님 기도하시겠습니다.
- 성경 본문: 히브리서 3:1-11 (신약 355면)
- 설교 주제: 신실하신 그리스도와 그의 집
히브리서 1장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만유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선 천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신 분이시며, 영원토록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높입니다. 그런데 2장에선 그 높으신 예수님께서 혈과 육을 입으시고 낮아지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저주, 그리고 죽임을 당하셨다고 말합니다. 높으신 예수님의 낮아지심, 곧 성육신을 이야기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낮아지셨습니까? 바로 2장 17절에 나오는 것처럼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선 자기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셨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백성들의 죄를 속량하시고, 또 고난을 당하는 자기 백성들을 돕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 1절에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 우리에게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3장에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신실하게 감당하셨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선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데, 그 직무를 신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모세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3장 2절 말씀에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실함이란 단어는 어떤 직무에 대해 충실하게 감당한 것을 말합니다. 2절 말씀은 민수기 12장 7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이 말씀에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충성되게 행하였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집을 위해 맡기신 것들을 자발적으로 이루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직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처럼 신실하게 행하신 결과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입어 죄가 속량되고 예수님의 형제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근거해서 우리가 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신 분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저주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선 모세보다도 더욱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합니다. 모세와 비교하는 이유는 기독교를 믿은 뒤에 탄압과 핍박이 오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던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를 대표하는 모세보다도 예수님께서 더욱 영광을 받으시고 우월하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굳게 붙잡을 것을 독려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부족한 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세를 평가절하해선 안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한 자요, 하나님께 충성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께선 모세와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차이는 집 지은 자와 집의 차이입니다. 3절 말씀이 이를 말해줍니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집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는 사무엘상 2장 35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데 사무엘상에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실 것이고,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선 집 곧 교회를 지으신 분이고, 모세는 교회에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선 교회를 창설하시고,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가지신 분으로 모세가 가진 영광과 비교했을 때 비교도 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가지신 분께서 그의 집을 위해, 그의 교회를 위해 성육신하셨고, 낮아지심을 신실하고 충성되게 감당하셨습니다.
두 번째 차이는 아들과 종의 신분 차이입니다. 5절과 6절을 보시면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했고, 그리스도께선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셨습니다. 종과 아들은 모두 하나님의 집에 신실하게 행하였지만 신분적인 차이가 있기에 느낌이 다릅니다. 종이 신실한 것과 아들이 신실한 것은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조사를 다르게 쓰는 것을 통해 세밀하게 구분합니다. 모세에 대해 설명할 때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라고 할 때 ‘~에서’를 강조하는 반면 예수님을 설명할 때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이라 하면서 집의 주권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의 집을 위해 신실하게 행하셨음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집의 주인이 집의 구성원을 위해 신실하게 행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앞부분의 내용을 요약하면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교회를 창설하신 분이신데 그 교회를 위해 예수님께서 신실하게 행하셨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인이 그 집을 위해 신실하게 행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진 의로움과 영광이 우리의 노력이나 신실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우리가 의롭게되고,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신실히 행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신실하게 행하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고, 붙잡으라고 권면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가장 낮아지시고, 저주를 받으신 이 사실을 주목하여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집이기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확신하고, 자랑하며 살라고 합니다.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집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이 이를 증언합니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예수님의 집인 교회는 예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7절 이하로 나온 말씀처럼 마치 광야에서 생을 마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7절부터 11절까지는 시편 95편을 인용하는데, 민수기 14장의 내용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해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고, 마음이 다른 것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 대신에 다른 길로 향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95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떠나 유대교로 가는 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한 것과 같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집인 교회를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마음을 겸허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확신하고 오직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실하신 그리스도의 집이 따라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민수기 14장 30절은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시편과 오늘 말씀 11절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다윗 시대 이후로 땅에서 왕의 통치를 받는 안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왕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참된 안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훗날 완전히 누리게 될 하나님의 통치와 안식 곧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식을 소망하면서 예수님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며 안식을 누리기까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확신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선 신실하신 제사장 뿐 아니라 견고하고 신실한 집을 향하여서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를 향하여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했던 사무엘상 2장 35절에도 신실한 집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선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울 것이고, 그 집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님 앞에서 영원히 행할 것이기에 집도 신실하고 견고하게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신실한 집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집에 대하여 신실하게 행하셨듯이 그의 집인 교회도 하나님에 대해 신실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중요하고 필수적인 자질은 신실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에 대해 충성되고 신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신실하지 않은 사람은 쓰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언제나 다른 이유를 앞세웁니다. 다른 핑계를 대며 이것 때문에 내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신자가 그렇게 행한다면 바로 돌이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거절하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곧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모세 시대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를 하나님이라 부르며 자기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을 되풀이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허하고, 신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신실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모세보다 질적으로 더 우월하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신실한 인도자가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신실하신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는 신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신실한 인도자와 신실한 백성의 교제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확신하며, 신실히 살아갈 때 우리에게 참된 안식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참된 안식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려움이 우리를 엄습할 지라도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확신하고,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신실한 인도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참된 안식을 소망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와 동등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심과 낮아지심을 신실하게 행하심으로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저희도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새 힘을 허락해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신실한 집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 주기도문 : “주기도문으로 수요기도회를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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