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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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예배 중에 오직 하나님만 집중하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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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14 주 우리 하나님
본문 출20:22-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복된 아침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아름다운 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불안을 붙들어 주시고, 속히 코로나를 거두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시기에도 택한 백성들의 믿음이 도태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날마다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 새벽의 시간에 말씀을 듣습니다.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는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단과 그 제단에서 섬길 제사장에 대한 간략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먼저 ‘제단’에 대해 생각해 보기에 앞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약시대에도 ‘교회 안에 제단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다. 간혹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주의 제단을 기억하여 주시고 … ’ 이런 ‘주의 제단’ 이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경우들이 있다. ‘제단’ 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만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제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신다면, 여전히 교회 안에 제사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드려 완전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그 제사는 모든 택하신 백성들을 구속하기에 완전하고도 충분했기 때문에 신약교회는 더이상 제의적인 희생제사가 필요없다. 다만 그 의미만이 남아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역시도 나의 죄와 부정함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제단 위에 성령의 불로 태우는 이러한 의미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적용할 부분이지 교회에 적용할 부분이 아니다. 교회에는 더이상 제단이 필요없다. 예배당이나 설교단을 가리켜 제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는 뭔가 부족했기 때문에 또 다른 제사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설교단이나 교회 예배당을 제단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주의해야 하겠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제단을 쌓을 때 두 가지 경우를 말씀하신다. 24절에서 ‘토단’으로 쌓는 경우와, 25절에서 ‘돌로 제단을 쌓는’ 경우이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떠난 후 재료를 가리지 않고 흙이나 돌로 제단을 쌓는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만약 돌로 제단을 쌓게 될 경우에 잘라낸 돌이나 다듬은 돌로는 쌓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돌로 제단을 쌓게 되는 경우에는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를 사용해야 했다.
요즘 아내랑 일주일에 한번씩 등산을 다닌다. 관악산이나 검단산이나, 감악산과 같은 이름이 잘 알려진 산들을 다니다보면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돌탑이다. 사람들은 주변에 널려진 자연석들을 가져다가 돌탑을 쌓으며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간구한다. 돌탑은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제 키보다 큰 것들까지 다양하다. 미신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돌탑을 쌓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통 이렇게 자연석으로 돌탑을 쌓을 때에는 가장 아래에 크고 단단하고 넓적한 돌을 두고, 그 위로 갈수록 돌의 크기가 작아진다. 네모 반듯한 돌이 가장 좋은 재료가 되겠지만 자연석 중에 그런 돌 찾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불안해진다. 중간중간 틈마다 작은 돌들을 끼워넣어 균형을 맞춰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럴때는 마치 벽돌처럼 네모 반듯한 돌들을 쌓아 올리는 것이 더 흔들림없이 견고하고 빈틈 없이 단단하며 외관상으로도 깔끔할 것 같다. 이왕이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단을 쌓을 때에도 이와 같이 다듬은 돌로 정갈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흔들림없이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빈틈없이 단단하며, 또한 외관상으로도 깔끔하게 다듬은 돌로 쌓아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당시 배경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나무를 다듬는 목수와 돌을 다듬는 석수 혹은 석장과 같은 직업들이 나름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시 고대근동 사회에서 이와 같이 목수와 석수는 거의 대부분 우상을 만드는 직업과 연관이 있었다. 요즘에도 조금만 시골로 내려가면 이런 석장하시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큰 돌에 회사 이름을 새기기도 하지만 부처와 같은 우상들을 만들어 세워두기도 하지 않는가.
우상들을 섬기는 당시 주변 이방민족들은 이처럼 우상을 제작하던 석장들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제단을 쌓곤 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던 자들은 점점 더 제단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이왕이면 조금 더 아름답고, 이왕이면 조금 더 깔끔하고, 이왕이면 조금더 값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이왕이면 다른 조각상들도 함께 새기고, 여러 조형물들을 세워둠으로서 제단을 신성시하기 시작한다. 그 제단만 보아도 모든 사람들이 압도될 수 있을 정도로 제단을 거룩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죄인들의 특성이다. 마치 로마카톨릭이 사제가 입던 옷을 거룩하게 여기고, 또한 사제가 기도한 물을 거룩한 물이라 부르고, 사제가 머무는 교회를 거룩한 성전이라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따르는 풍습과는 구별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기 때문에 지음받은 그대로의 것, 자연적인 것들만을 사용하여 제단을 쌓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명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단을 내 마음대로 손을 대고 장식하기 시작하면, 그 제단을 하나님보다 숭배하게 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이 이런 자연피조물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임을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연 그대로의 제단은 이방민족들이 사용하던 제단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바람에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제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단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단이었고, 그 제단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단이었다.
여러분, 인간의 연약한 죄성들이 이와 같이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원한다. 그 결과 로마 카톨릭은 성상이나 성물, 성화등을 만들어서 이것들을 통해 그들의 종교적인 갈급함을 충족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예배가 타락했고, 교회가 부패했으며, 진리로부터 멀어졌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하나님 그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고 오직 그분만을 합당하게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나, 혹은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종교적 분위기를 돋우려 하는 모든 시도들은 오히려 하나님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과 같음을 기억하라.
두번째로 살펴볼 것은, 제단에 오를 자에 대한 규례이다. 본문의 말씀 26절을 함께 읽어보자.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당시 우상을 섬기던 이방민족들은 종교적 의식을 행할 때에 하체를 드러내는 일들이 흔했다. 제사장들은 짧은 웃옷을 입고 제단에 올라가거나, 여러 격한 의식들을 통해 하체가 벗겨지는 일들이 흔한 일이었다. 이러한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라. 얼마나 음란하고, 무절제하며, 방탕한 광경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단에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 자체를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고, 또한 출28:42 를 통해서 제사장 규례를 주실 때에 제사장들이 반드시 속옷을 입을 것을 명하신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이 부분을 생각해보자. 단지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하체가 드러나는 일이 무절제하고 음란했기 때문에 금하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리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제물을 받으시어 죄를 용서해주시는 시간이고, 죄로 인하여 깨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언약을 다시금 상기하는 시간이며, 또한 언약백성으로서 복을 받는 시간이다. 즉, 제사의 시간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중심이다. 그러나 지금 제사를 인도하는 제사장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당연히 이러한 제사장의 모습은 제사드리려는 자들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제사를 드리려는 자들이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굿판을 벌이고 있는 무당들을 생각해보라. 저는 무속신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나, 그들이 왜 그토록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고, 왜 그렇게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가. 그들이 믿고 있는 조상신에 집중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굿판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곳이었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당시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주변민족들도 비슷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단은 그들이 믿는 신께 집중하는 자리가 아니라 제사장을 드러내는 곳이었고, 제사장에게만 집중시키는 자리였다.
여러분의 예배를 돌아보길 바란다.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께만 마땅히 집중해야 할 예배의 시간에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을 다하여 감격 속에 찬송하시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크신 팔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는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계시는가? 혹 예배의 시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몸은 하나님 앞에 나아왔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는가? 몸은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담아두고 있지는 않는가?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커다란 하나의 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길 원하신다. 설령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제단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보다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설령 제사에 수종드는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보다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이제 여러분의 예배를 돌아보라. 내일이면 또 주일이 올 것인데, 과연 우리의 예배에서 하나님보다 더 주목했던 것들은 무엇이며, 하나님보다 더 관심있어 하던 것들은 무엇이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사랑하던 것들은 무엇이던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앞에 진실하게 기도하자. 예배 중에 하나님께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이 있다면, 다 주 앞에 내려놓게 하시고,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예배가 될 수 있도록,주님께만 집중하는 우리의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주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우리의 주일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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