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28-30 / 쉬운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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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멍에 (마태복음 11:28-30)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분위기 조성]

EBS FM라디오에 직장인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부에 대해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설문조사 결과,
아부는 인간관계에 꼭 필요하다(44%)
아부는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53%)
내 상사는 아부를 좋아한다(61%)
즉, 직장인들의 과반수가 이 아부라는 것을 직장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로 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이 아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아부’를 해서는 낭패를 보기 쉽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부의 황금률’, 즉 아부를 할 때 꼭 지켜야 할 수칙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그것이 이러합니다.
아부의 황금률,
1.그럴듯하게 해라.
2.없는 곳에서 칭찬해라. (흘러들어가게 하기)
3.누구나 아는 사실은 칭찬하지 말라. (그 사람만의 독특한 장점이나 능력)
4.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5.여러 사람에게 같은 칭찬을 되풀이 하지 말라. (과유불급: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아부는 직장인들만의 기술이 아니죠? 아부의 기술은 직장 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유효합니다. 지금도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학교에서는 선배에게, 군대에서 고참 그리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에게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부의 기술이 아닐까요? ^__^

WHY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부를 할까요?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잘 보여서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 아부를 합니다. 또 자신의 모습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서도 아부를 합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아부를 합니다. 이런 이유들을 보면 우리가 아부를 하는 이유는 좀 더 빠르고 좀 더 쉽게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원합니다. 안식 또는 휴식이라고 불리는 삶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찾습니다. 그 편안한 삶, 휴식과 안식이 있는 삶을 위해서 아부를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아부를 통해 잘 보이기 되면 그만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어지게 되고 일하기도 수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정,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안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서 아부를 한다는 것이죠.
BUT 그러나 아부의 기술이 과연 우리에게 휴식과 안식을 줄 수 있을까요?
히3:11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아부의 기술이 뛰어나면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편안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삶이 조금 편해질 뿐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아니 오히려 편해지려고 하는 아부와 같은 세상의 노력과 기술들 때문에 몸과 마음은 더 피곤해지고 탈진해 갑니다.
SO !
쉼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도 얻지 못하는 세대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참된 안식, 참된 쉼을 얻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크게 세 가지로 우리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1.주님께 가까이 가라

1)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먼저 주님은 ‘내게로 가까이 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모두가 다 내게 오면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께 나아가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나아오는 자를 쉬게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우리는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죠. 반대로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점차 점차 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쉼을 얻게 되나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8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바로 뒤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예수님께 고발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말씀하시면서 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주의 사상을 비판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다 자신들의 전통을 갖다붙여서 수백가지의 율법을 삶에서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전통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순된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켜오던 바리새인들 꾸중하시면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알려주십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4:8은 말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평안과 안식의 삶을 향한 첫번째 스텝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우리는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안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쉼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발걸음이 주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다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은 없습니다. 휴식과 평안을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점점 더 세상의 짐이 버겨워지고 힘들어질 것입니다.

2)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신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참된 안식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보니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누구를 말할까요? 이들은 두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 당시에 율법에 얽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율법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거운 짐이 되어서 삶과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와 평안을 율법에 얽매여 누리지 못하므로 늘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의 심판 앞에 놓여있는 백성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죽음의 심판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율법에 얽매인 자들, 자유를 상실해 버린 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자들, 세상의 짐과 고통을 다 짊어진 채 신음하는 자들을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참된 안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평안이 없는 이들의 삶을 오직 예수님만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모두가 주님께 나아가 참된 안식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2.예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라

두 번째로 예수님은 참된 안식을 얻는 방법은 “나의 멍에를 메는 것이다.”로 말씀하십니다.
29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를 메라는 것이죠. 그리하면 우리가 쉼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멍에를 메는 것이 우리에게 쉼을 줄 수 있을까요? 멍에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속박, 답답함, 무거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멍에란 결코 좋은 이미지가 아니죠. 될 수 있으면 우리는 멍에를 지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주시는 멍에를 우리가 꼭 메시길 원하십니다. 그 멍에를 메면 평안과 안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멍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멍에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순종하기도 힘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30절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멍에가 우리를 속박하고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내 멍에는 쉽다”고 할 때의 쉽다는 크레스토스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적절한’ 그리고 ‘유용한’ 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멍에 곧 주님의 교훈과 명령은 구원을 얻기에 합당하고 또 그 멍에를 메고자 하는 자에게 유익과 기쁨을 안겨준다는 뜻이죠. 즉,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주며 기쁨을 가져다 주며 안식과 평안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멍에’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속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멍에는 어떤 동물이 지는 것이었죠? 네 바로 주로 소가 멍에를 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소가 메는 멍에는 혼자 메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드시 한 쌍의 소가 멍에를 같이 메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같은 일을 사무엘상 6:7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렇게 소 두마리가 함께 지는 멍에는 구속, 답답함, 무거움, 짐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함께’라는 이미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메는 이 멍에를 지금 우리에게 메어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함께 메는 멍에를 누구와 같이 메는 걸까요? 바로 이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혼자서 멍에를 메는 것은 힘듭니다. 우리 혼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와 멍에를 함께 메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의 무게를 함께 감당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멍에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이상 멍에 지는 것을 겁내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멍에는 주님께서 함께 지시는 것이기에 무겁지 않습니다. 답답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짐이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가볍고 쉬운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이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지시는 이 멍에를 멘다면 결국 우리 마음은 쉼을 얻게 됩니다. 안식을 되찾게 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우리 마음은 평안합니다. 이 쉽고 가벼운 멍에, 주님이 함께 메시는 멍에가 주는 안식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3.예수님께 배우라

세 번째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다시 한번 29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스승으로 여기고 그 가르침을 배우라는 말씀이죠. 여러분, 어떤 스승을 좋은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과외를 한다고 할 때 어떤 선생님이 가장 좋은 선생님일까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틀에 맞춰서 정확하게 진도를 빼 나가는 선생님일까요? 아니면 담당한 학생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파악해서 맞춤식 강의를 하는 선생님일까요? 아마 후자일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좋은 스승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목수는 주택 건축의 모든 목재 일을 하였으며 돌을 다루는 일과 가구와 농사 도구를 만드는 일도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목수의 아들로서 목수의 일을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목수일을 하시면서 여러가지 목재를 다뤄보시고 돌도 다뤄보시고 가구와 농사 도구를 여러번 만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 농사에서 빠질 수 없었던 소에 메우는 멍에도 예수님께서는 수차례 제작해보셨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어떤 정형화된 틀이 없었기 때문에 눈짐작과 경험으로 소의 몸에 딱 맞는 멍에를 제작해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멍에를 메라고 하시면서 우리 몸에 딱 맞는 멍에를 허락해 주십니다. 본인 스스로가 이 멍에 제작을 수도 없이 해 보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우리 몸에 딱 맞는 멍에를 지워주신다는 거에요. 어깨가 결리지 않는, 마치 내 몸과 같은 멍에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좋은 스승이 되십니다. 예수님께 나가서 예수님께 배운다면 우리의 멍에는 짐이 아니라 좋은 것이 됩니다. 즐겁습니다. 우리 몸에 딱 맞게 맞춤제작 되었기에 멍에를 메는 것이 너무도 쉽습니다.
HOW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스스로 멍에를 메는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법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몸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시면서 우리의 참된 스승이 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 가운데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멍에를 메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멍에 메는 법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멍에를 멘 소가 나아가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신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 삶을 사셨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그 분의 순종으로 우리는 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완벽하게 멍에를 메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의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을 닮아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멍에가 아니라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을 주며 우리의 삶을 기쁘게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최고의 스승인 주님께 배우십시요. 주님만이 우리를 참된 안식으로 이끄십니다. 우리 몸에 딱맞는 멍에를 주시고 그 멍에를 메는 방법을 몸소 알려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평안과 쉼을 맞볼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세상의 기술과 방법들로 안식을 찾으려고 합니다. 명상, 요가, 맛있는 음식, 좋은 책과 아름다운 음악들. 이런 것들을 통해 그들의 쉼없는 마음에 안식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좇아 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세상에는 참된 안식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안식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요. 조금 더 쉬려고 아부의 기술을 연마해 나가는 세상에 모습과 닮아가지 마십시오. 남보다 더 빠르게 쉽게 안식을 누릴려고 세상의 것들로 내 마음을 물들여 가는 삶을 살지 마세요. 세상의 방법과 기술은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줄 수 없습니다.
안식을 원하십니까? 평안을 원하십니까?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멍에는 무겁지 않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메심으로 오히려 더욱 가볍고 기쁨이 되며 쉼이 됩니다. 안식이 됩니다. 그리고 최고의 스승이신 주님께 배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순종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몸에 딱 맞게 맞춰주시는 멍에를 통해서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 이번 한주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제목

1.이 시간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혹시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힘든 삶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 때문에 세상에서 안식과 평안을 찾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세상은 평안을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을 속이는 말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가 세상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평안을 간구하게 해 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아가 참 평안을 누림으로 삶의 기쁨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2.다시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길은 언뜻 미련해 보이지만 그길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 멍에를 함께 지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평안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하나님, 우리가 주께서 주시는 멍에를 지길 원합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전도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길 원합니다. 그럼으로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3.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이들에게 참 평안과 안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들의 눈에서 슬픔의 눈물을 닦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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