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의 고기 분배

레위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01 views

1. 제사장의 것 2. 요제와 거제 3. 제사장의 것을 지명하신 이유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F
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View more →
1. 장례광고
5교구 4구역 백경진 집사님 부친되시며 이경아비집사님 시부 되시는 고 백창훈 성도님의 천국환송예배가 내일 토요일 아침 7시 15분에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있습니다. 오늘은 조문이 불가하며 코로나 19 감염예방을 위해 조문을 원하시는 분은 개별적으로 이동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사장 분깃

쉽지 않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이 새벽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화목제 중 제사장 분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화목제에 대해 말씀을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은 친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화목제 였습니다. 따라서 희생 제물의 콩팥, 간 그리고 기름만을 불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부위의 고기들은 예배자가 그 구성원들과 함께 먹습니다. 이것이 화목제만의 특징이라 말씀을 나눴었습니다. 이 화목제에는 독특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를 인도한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제물 중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제물의 가슴부위와 오른쪽 뒷다리 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던 이 화목제의 제물에 제사장들을 위한 분깃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이것을 그냥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화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가져온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들고 무엇인가를 해야 했습니다. 제물의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아야 했고,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가져가는 오른쪽 뒷다리를 거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참 어려운 내용이 가득한 레위기를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또 이런 부분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방식과 그 이유 또 드려지는 제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소화시키면서 말씀을 읽어 나가고 있는데, 오늘 또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요제와 거제입니다. 요제와 거제. 이렇게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하면 사실 더 이상 읽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어렵고 막히는 단어가 나오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거든요.
레위기 본문을 보면 요제와 거제 둘다 제사장이 가져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일단 요제로 삼은 가슴 부위는 일반 제사장들이 가져갑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집례 할 수 있는 모든 제사장들이 공통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가슴 부위입니다. 거제로 삼는 오른쪽 뒷다리 부위는 일반 제사장들 중에 해당 제사를 집례한 사람의 몫이 됩니다. 아마 오른쪽 뒷다리 부위는 상대적으로 양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가 치킨을 시켜 먹을 때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퍽퍽한 가슴살은 많은 반면 다리는 두개 뿐이잖아요? 화목제물로 드려지는 제물들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습니다. 네 발 중 하나 오른쪽 뒷다리 부위이기에 모두가 먹기에는 분명 충분하지 않은 양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제로 드려진 가슴은 모든 제사장들이, 거제로 드려진 오른쪽 뒷다리는 해당 제사를 진행한 제사장만이 가져갔습니다.
그렇다면 요제거제는 무엇일까요? 이 단어가 어떤 뜻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우리는 오늘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목제에 등장하는 요제와 거제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 중 하나입니다.
요제는 히브리어로 좌우로 흔들다 라는 뜻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요제로 바쳐진 제물의 가슴을 들고 좌우로 흔드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거제는 위로 올리다 라는 뜻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른쪽 뒷다리로 드려진 거제를 들어 올린 상태에서 이렇게 위 아래로 흔드는 의식을 제사장은 진행합니다.
왜 좌우로 흔들고 위 아래로 흔들었을까요? 위로 올리는 행동은 이 오른쪽 뒷다리가 나에게 오기 전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모두에게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이 부위를 나의 몫으로 챙겨 가져 가는데, 나의 욕심으로 이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먼저 바쳐졌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다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그러한 의식을 보며 오른쪽 뒷다리에 대한 불손한 마음을 갖지 않고 당연히 제사장의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제와 거제의 차이점이 또 있습니다. 요제는 반드시 회막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제물의 가슴을 들고 좌우로 흔드는 이 행위는 반드시 회막 안에서만 진행이 되어야 했습니다. 요제를 바칠 때 제물의 가슴과 기름을 함께 들고 옵니다. 제사장은 가슴을 좌우로 흔들고 난 후 기름을 제단 위에 불살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회막 안에서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 반해 거제는 오른쪽 뒷다리는 굳이 회막 안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위아래 올렸다 내렸다 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제는 회막 안. 즉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고, 거제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드려집니다. 그리고 이 짐승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영원히 제사장들의 소득으로 공포되어 집니다. 그리고 37-38절을 통해 모든 제사들들을 다시 언급하며 마무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제사들을 쭈욱 설명하셨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사에 대해 세세하게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들에 대해 이야기 하시다 마지막에 제사장들이 가져가야 할 분깃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대한 언급을 맨 마지막에 하셨을까요?
당시 제사장들은 다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고, 백성들이 가지고 오는 제물들을 다양한 제사들로 올려드리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은 다른 일을 절대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삶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이들을 책임지려 하셨던 것이죠. 물론 제사장이 아닌 다른 백성들도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보호하고 챙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여러 일들을 통해 자신들의 재산을 불려나갈 수도 있었고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제사장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규례를 정해주신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굉장히 까다로운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냥 가지고 온 제물들을 제단에 태워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죄에 대해 들어야 했고, 그 죄를 대신 지는 제물들의 각을 뜨기도 하고 손에 피를 받아 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겨진 제물들의 재를 처리하고 제단을 청소해야 했습니다. 또 아침 저녁으로 불을 피워 올리며 계속해서 그것들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제가 인도에 있었을 때 2천여년동안 불을 지켜오는 가문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가문의 역할은 불씨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환생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으면 그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선행. 카르마를 가득 채우면 부자, 귀족 등으로 태어날 수 있다 믿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카르마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죠. 하루 하루 생존하는데 급급한 그들은 절대 선행과 카르마를 채울 수 없습니다. 카르마가 충분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 동물이 될 수도 있고 곤충이 될 수도 있다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불을 찾아갑니다. 이 불에 태워지기만 하면 단번에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 환생의 굴레가 끊어진다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가문은 이 불을 목숨을 걸고 지킵니다. 태풍이 불어도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그들의 존재 목적은 불씨를 지키는 것입니다. 정말 엄격하게 자신들의 삶을 제한하며 불씨를 끊임없이 지켜봅니다. 그들에게 다른 여가 생활은 사치라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 역시 불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단 위의 꺼지지 않는 불은 하나님의 임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꺼지지 않는 제단 위의 불을 보며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그 사실을 계속해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삶을 제한해야 했습니다. 다른 것들에 마음을 쏟거나 눈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대로 지키는 본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사를 준비할 때 어떤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든 절차를 계속해서 확인했고, 자신들이 그 제사를 집례해도 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돌아보았습니다. 예배에 대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들과 내용들을 잘 듣고 이해했어도 우리는 곧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기억에 남고, 보는 것보다 실제로 해보는 것이 더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이런 제사들을 드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금방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색한 이런 제사법들이 참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굳이 우리가 이러한 제사법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세세하게 제사들의 내용과 드리는 방법을 기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한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이런 제사들을 주셨는가?에 대한 답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힐 의도로 복잡한 제사를 주신 것도 아니고, 우리의 머리가 터지라고 어려운 제사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제사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제사들을 마무리하며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같이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호흡하며 걷기를 원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말씀하십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이지만, 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사와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사뭇 그 형식에 차이가 있지만 의도는 분명하게 동일합니다. 제사와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결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가지의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하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와 같이 살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하나님께서 옆에 계실 자리를 내어 드렸는가를 묵상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호흡 할 수 있는 그 자리를 기꺼이 내어드리는 기도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