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님

정사 예배 2022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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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27:46 NKRV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S1. 환영과 인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수난 예배에 함께 하셔서 은혜를 나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예수 사랑 새벽 기도회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해 함께 묵상했습니다. 성도는 구원받은 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 안에 주신 회복된 의지의 새로움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물론 우리는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거룩한 삶의 열매를 의의 근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종의 결과이고 순종을 통해 이런 열매를 맺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는 새로운 삶이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의 결과도 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공로적인 ‘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도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고 주신 은혜로 거룩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에 그것을 의로 자랑하지 않고 은혜 안에서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S2. 주제 제시

이러한 성도의 삶의 영광은 오직 한가지 은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죄성으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뱀의 유혹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인간은 사랑의 은혜로 주신 중생을 얻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며 죽음의 저주 아래 사는 존재들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며 아버지의 진노가 죄인을 추격하여 죽이시는 긍휼 없는 진노임을 고백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43절 말씀을 봅시다.
예레미야애가 4장 3절
3. 진노로 자신을 가리시고 우리를 추격하시며 죽이시고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며 끝까지 추격하여 죽이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도에 대하여는 구원자로 오시지만 악인에 대하여는 심판자로 오셔서 그 악을 끝까지 벌하시는 심판주시며 복수자십니다. 아담의 후손인 죄인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던 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노는 저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49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세기 49장 7절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에게 노여움과 분기를 가지시고, 사망의 저주를 부으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S3. 문제 제기

물론 사람들은 성경이 왜 사랑의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이신데 어떻게 심판의 주가 되시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항상 사랑이셔야지 왜 화를 내시며 저주를 쏟아부으시는 분도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은 사랑의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의 이단이었던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의 여호와로 더이상 세상에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신약의 예수님이 참 하나님으로 오셔서 참된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 그분만 하나님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단들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깊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는 악한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마음,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창세 전에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작정하신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셨고 그 지으신 것을 매우 선하다고 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순종의 법을 마음에 주셔서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온전한 지위를 얻는 영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의 조항들을 파괴하는 자들은 언약을 깬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 그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저주가 임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파기하고 사탄의 어리석은 거짓말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죄인이 되었고, 언약 조항의 파기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와 죽음의 저주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맞아 다시 영생의 삶을 얻지 못하는 불행한 저주의 삶을 살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하나님은 창조 전부터 그 마음에 두신 사랑의 작정을 이루시고자 죄인이 된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하나님이신 아들을 보내십니다. 아들 예수님은 인간이 처한 하나님의 진노 아래의 운명을 아시기에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온전한 율법의 순종을 이루셨습니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며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실 수 없는 죄없으신 온전한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십자가에게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외치며 이렇게 고백함으로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를 자신의 몸에 다 이루어 지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마태복음 27장 46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아버지를 향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며 그 진노를 온몸으로 감당하심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의 선언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의 버림받음은 곧 죽음 그 자체와 동일한 저주의 고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박다니’라는 말은 아람어인데, 히브리어로는 ‘아잡타니’로써 ‘아자브’라는 말이 ‘버린다, 유기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유기된 자와 같은 택하신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그로 인한 죽음의 저주를 온몸으로 다 이루셨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대신하셨습니다.

선택된 백성이라도 죄 아래에 있으면 유기된 자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죄 아래에 있을 때는 누구라도 능히 이 진노의 불을 감당할 자가 없습니다. 나훔 1장 6절은 이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훔 1장 6절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고집과 회개치 않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로마서 2장 5절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이처럼 세상은 스스로의 교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심판의 날에 임할 여호와의 진노를 차곡차곡 자신에게 쌓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 진노를 자신이 대신 다 감당하셔서 아버지의 분노를 누구러뜨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받고 죽음의 고난을 지심으로서 우리를 죽음과 심판의 저주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W2.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예수님 안에서만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라고 외치며 다 감당하셨을 때 택함받은 자들에게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 진노하심이 아들 안에서만 해결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시편 2장 12절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아들에게 입 맞추는 자, 구원자로 오신 여호와께 피하는 자만이 복을 누립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는 창세기에 이미 144회나 알려져 있었지만, 출애굽기 6장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이름이 구원자 곧 예수라는 이름으로도 같이 알려집니다. 여호와를 찾는 이는 구원주가 되시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택함받은 성도는 말씀의 선포를 듣고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언약 안으로 인도하실 중보자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를 해결하신 은혜를 믿음으로 성도는 양자된 새로운 신분을 얻어 새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향한 진노와 저주를 거두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고, 저주를 대신 지셨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죄인을 향한 모든 진노와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주님의 간절한 고통의 외침은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모든 진노가 자신 안에서 누그러뜨려 졌다는 선언입니다. 더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고난으로 인해 우리를 향해 있던 모든 죽음의 저주를 다 거두어 주시고 이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새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T1.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의 새 삶을 시작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는 지난 한주 회개한 자들, 중생을 체험한 사람들의 삶을 묵상했습니다. 이 모든 회개의 삶은 죄인을 향한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에서 이제 놓임을 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제 성도는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 줄 깊이 체험하는 회심의 경험을 가지게 되고, 평생을 죄 죽이기와 영 살리기에 힘을 다하며, 죽음 이후의 천국을 묵상하며 이 땅에서는 오직 아버지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이제 성도는 더이상 이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저 하늘의 자녀들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아버지의 회복된 백성입니다. 그 결과 성도에게 죽음은 최고의 목표의 날이며, 그 날 이후부터 시작될 저 영광의 하늘의 삶을 소망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망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T2. 세상은 진노와 저주 안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아들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진노와 저주 안에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에게 죽음의 날은 두려움의 날입니다. 세상에게는 이 땅에서의 성공과 행복이 절대적인 것이고 죽음 이후의 날은 소망 없는 날입니다. 이런 까닭에 세상은 오직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성취를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그 결과 세상은 죽음의 날이 절망의 날이고 끝장이 나는 낙심의 날이 됩니다.

T3. 그러나 성도에게는 진노와 저주가 없는 죽음 이후의 날이 참된 소망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것을 감사의 재료로 삼습니다. 세상의 것은 자랑할 것들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부와 존귀와 영광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진정한 자랑거리들이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부를 남기고 가셨을 것입니다. 주님 나라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물질의 복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머리 둘 곳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주님은 공중의 새나 여우에게도 머리 둘 곳을 주시고,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머리 둘 곳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런 것을 안 가지셨습니다. 왜요? 세상이 주님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 땅에 오실 것 아시고도 땅 한 평 안 사두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바꾸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세상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 아버지의 모든 진노와 저주를 자신의 몸으로 안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택하신 자들의 죄를 향한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는 이미 다 소멸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의 형상이 되어 참된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여전히 죄의 잔재들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참된 의인이 아닌 자인 것처럼 보이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신 주님의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모든 진노가 누그러뜨림을 받고 죽음의 심판의 저주가 사라지는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참다운 회개한 자의 믿음의 새 삶이 우리를 기다리는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안에 주신 자발적인 순종의 삶을 본받아 살기를 힘쓰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진노의 두려움과 저주의 불행은 다 사라지고 끊어졌습니다. 주님은 이제 우리를 아버지의 참된 형상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고, 아담의 잃어버린 모든 영적인 은사들이 성령님 안에서 다시 우리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내적인 은혜 안에서 우리 모두는 순종의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내 생애의 구주되신 주님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항상 성령님의 힘으로 죄를 죽이고 영으로 새 삶 살기를 힘쓰시고, 종말의 영광의 구원의 날을 꿈꾸고 이 땅의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감사와 섬김과 사랑의 삶을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진노와 저주의 고리를 끊으신 그리스도를 항상 묵상하며 우리의 일상이 참된 믿음의 승리를 누리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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