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안식과 남은 자의 두려움

레위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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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순종의 저주 2. 기근과 추방 3. 황폐화 4. 목적은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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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잃다.

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일어나는 5가지의 저주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4가지의 저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첫번째 저주는 폐병과 열병으로 일반적인 저주를 의미합니다.
두번째 저주는 첫번째보다 7배나 더 강한 저주입니다. 하늘은 철로 땅은 놋과 같이 되는 장기간의 가뭄을 말합니다. 장기간 황폐해져서 사람도 먹을 것이 없는 그 때
세번째 저주가 일어납니다. 들짐승들이 공격해와 그나마 남은 것까지 다 가져갑니다.
네번째 저주는 염병과 적들의 칼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마지막 5번째 저주에 대한 내용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먼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에 나온 축복의 내용보다 저주에 대한 부분이 압도적으로 길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는 것보다 저주를 내리는 것을 더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가 내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불순종의 모습을 보입니다.
5번째 저주는 2번째 저주와 비슷해 보입니다. 5번째 저주 역시 가뭄으로 인한 기근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때의 기근은 2번째 기근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두번째 저주 때 까지는 그래도 잘 살펴보면 먹을 것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짐승들이 공격해서 먹을 것을 빼앗아 갔다 할지라도 그래도 먹을 것이 아예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5번째 저주에는 먹을 것이 아예 없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아예 없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말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인간되기를 포기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9절입니다.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자신의 자녀를 먹는 식인의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됨을 포기하는 사건. 내가 살고자 자녀의 살을 먹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 30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살기 위해 자녀들까지 먹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굶어죽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시체는 우상을 숭배했던 산당과 우상 위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우상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비를 내려 풍요를 회복시켜달라고 우상 앞에 매달렸습니다.
그들이 우상을 세우고 산당과 분향단을 세운 이유는 비와 풍요로운 수확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사랑했던 우상은 자녀까지 잡아먹음에도 굶어죽는 그 순간까지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기적도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간단합니다. 우상은 진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비와 풍요로움의 주관자는 그들 스스로 만들었던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풍요로움은 오직 여호와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랐을까요? 저는 알았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하나님에게도 제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그 순간에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병들고 굶어죽은 시체들로 가득한 우상산당의 의미는요.
이스라엘 온 백성이 여호와가 아닌 이방 신에게 속해 있으며, 우상의 통치를 받기로 결단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자녀를 잡아먹으면서 인간되기를 포기하기 전에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인 인간의 지위를 버렸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그 앞에서 굶어죽게 되었던 것이죠.
이스라엘은 삶의 터전인 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식인을 했고, 끝까지 이방 신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 쫓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 타국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들은 이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던 이방나라 사람들이 32절의 말씀처럼 충격을 받습니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먹을 것 혹은 좋은 것을 약탈해오기 위해서 공격하지 않을까요?
힘들게 공격했는데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허무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이방 나라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가뭄과 굶어죽는 사람들 그리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그 땅을 보며
“내가 알던 이스라엘이 맞는가? 왜 이렇게 폐허가 되었을까?”
“어떻게 약탈할 것이 단 하나도 없을까?”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스라엘은 자기네 신에게 이렇게 벌을 받았을까?”
기껏 공격할 준비를 하고 쳐들어왔는데, 너무나 허무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이방 나라마져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폐허가 된 것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저주가 남아있습니다.
바로 31절입니다. “너희의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거부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를 거부하는 것의 의미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 끊어버리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입니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아예 받지 않겠다! 라고 하십니다.
기근과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서 그들이 드디어 하나님을 떠올리고 예배하러 온다 할지라도 그 예배를 받지 않겠다 하십니다.
33절처럼 “칼을 빼어 뒤즐 쫓도록"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소망이 없습니다. 기근과 전쟁에서 살아남아도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칼에 쫓기게 될 것입니다.
36절처럼 이제 그들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쫓지 않는데 불안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온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라고 하신 것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떠올리고 돌아왔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들의 모든 종교활동과 마음은 이방신에게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들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니, 하나님을 떠올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겠다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약속의 땅에서 모든 백성을 쫓아낸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우상숭배하던 그 땅에 안식을 주겠다 말씀하십니다. 사는 사람이 없으니 땅은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불순종의 댓가로 일어나는 이 다섯가지의 저주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스스로 거부한 민족의 종말을 보여주는 굉장히 무서운 내용입니다.
서두에 밝혔듯 하나님께서 이러한 저주를 내리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바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돌이킴과 회개입니다.
이 신, 저 신을 의지하다 안되면 하나님 앞에 왔던 이스라엘의 모습처럼 우리도 나의 경험, 생각 혹은 자기 의에 따라 하다 안되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돌이킴과 회개를 경험한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내 앞에 있는 상황을 내가 해결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다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용서와 구원을 이루어 주시겠노라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그리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흔적을 지우고 있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합니다.
저는 지난 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청년들과 함께 수련회를 하며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수련회 기간 동안 우리 청년들은 정말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선포했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삶의 결단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뜨거운 결단을 했다고 해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매일 선포한다해도 사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억압하는 세상의 공격이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계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가정에서 예배 드리고 계시는 모든 분들도 동일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을수록 세상은 그 붙잡은 손을 놓도록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혼란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불순종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불순종한다고 해서 가뭄이 들고 들짐승들이 집에 침입을 하고, 우리가 자녀를 잡아먹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순종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우리가 치뤄야 하는, 저와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분이시죠.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만큼 우리에게서 그 죄에서 돌이키도록 여러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실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있는 희망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몰아내신 하나님은, 땅에 안식을 선포하십니다. 안식을 선포한 의미는 그 땅을 쉬게하여 회복시키는 것에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그 땅을 회복시킨 후, (쉬고) 약속의 백성들을 그 땅에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안식의 시기를 지나 회복된 땅 위에 약속의 백성들을 다시 불러모아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우리의 삶에 어떠한 어려움 혹은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돌이키고 회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이미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회복의 자리로 이끌어 가기 위한 일이라 생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한 고난과 어려움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목적은 우리 삶에 하나님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가지 저주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멸망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어렵게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멸망시켜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셨기에 그렇게 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2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돌아오기를, 하나님 앞에 서 하나님과 눈 맞추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기를,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힘과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오늘 하루 우리의 매일이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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